2016년부터 시작한 '농구영신'은 KBL이 자랑하는 정규리그 최대 이벤트 중 하나다. 아이디어가 기막혔다. '농구영신' 경기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늦은 밤에 개최된다. 프로농구가 겨울 시즌에 열리는 점을 활용해 농구장에서 선수단과 팬 모두가 함께 카운트다운을 외치며 새해를 맞이한다.
'농구영신'은 정규리그 일정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이벤트다. 2016년 첫 해부터 울산 현대모비스와 대구 한국가스공사의 울산 경기로 펼쳐진 2024년 경기까지 7년 연속 매진 사례를 이뤘다.
2024년 '농구영신'의 분위기는 예년과 달랐다. 지금은 지난 12월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피해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국가 애도 기간이기 때문이다.
양팀 사령탑들의 마음도 무거웠다. 조동현 현대모비스 감독은 "좋은 축제가 되면 좋았겠지만, 오늘은 차분하게 경기에 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혁 한국가스공사 감독도 "웃는 것도 미안한 요즘이다. 진중하게 경기하겠다"고 말했다.
현대모비스와 한국가스공사는 응원전을 펼치지 않았다. 응원 단장과 치어리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선수들을 격려하는 응원 구호와 음악 등 앰프 응원도 없었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경기가 진행됐지만 응원 열기는 뜨거웠다. 현대모비스는 게이지 프림과 박무빈, 한국가스공사는 샘조세프 벨란겔을 앞세워 초반부터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경기의 질이 좋다보니 앰프를 활용한 응원이 없어도 괜찮은 분위기였다. 관중들이 자연스럽게 경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양팀 모두 활발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강도높은 수비를 펼쳤음에도 야투 적중률은 나쁘지 않았다. 현대모비스가 1쿼터를 10점 차 리드와 함께 마쳤지만 한국가스공사는 3쿼터 한때 스코어를 뒤집는 등 저력을 과시했다.
현대모비스는 약 보름 만에 1군 경기에 나선 빅맨 김준일이 3쿼터 공수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 데 힘입어 66-59로 3쿼터를 마쳤지만 한국가스공사는 4쿼터 시작과 함께 연속 득점을 몰아쳐 다시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올 시즌 현대모비스에게는 특이한 기록이 있다. 현대모비스는 이날 경기 전까지 10개 구단 중 5점 차 이하 점수차로 끝난 경기가 11회로 가장 많다. 승률도 압도적이다. 11경기 중 무려 9경기를 이겼다.
그만큼 위기에 강하다는 뜻이다. 이날도 그랬다. 66-66 동점 상황에서 베테랑 함지훈이 연속 4득점을 퍼부어 팀을 구했다. 김낙현이 반격을 이끌었지만 그때마다 숀 롱과 함지훈이 달아나는 점수를 만들었다.
한국가스공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4쿼터 막판 다시 2점 차까지 추격했다. 결정적인 득점은 박무빈의 손에서 나왔다. 종료 1분 2초 전 공격제한시간에 쫓겨 던진 중거리슛이 림을 가르면서 스코어가 85-81로 벌어졌다.
결국 현대모비스는 한국가스공사를 88-81로 눌렀다.
박무빈은 17점 6어시스트, 숀 롱은 16점 3리바운드를 각각 기록하며 활약했다. 함지훈은 15점을 보탰고 이우석은 팀내 최다 9개의 어시스트를 배달했다. 김준일은 3쿼터 6분만 뛰었지만 4점 2리바운드 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가 코트에 머물던 시간 동안 팀은 득실점 차이 +7점을 기록했다. 알토란 같은 활약이었다.
현대모비스는 올 시즌 접전에 유독 강한 '강심장'의 면모를 또 한 번 자랑했다. 조동현 감독은 "어려웠던 경기를 한 두 차례 잡아내면서 선수들에게 자신감이 생겼다. 힘든 경기를 잡아내는 능력이 나아졌고 선수들 역시 승부를 즐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는 2024년 12월 31일 오후 11시 54분에 끝났다. 코트 정리를 마친 뒤 KBL 이수광 총재와 양팀 단장, 감독들이 모여 양팀 선수단과 팬들이 자리를 지킨 가운데 새해를 맞이하는 타종 행사를 열었다. 국가 애도 기간인 만큼 홈팀 선수단의 인사 정도만 진행됐고, 예년과 달리 DJ 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는 펼쳐지지 않았다. 대신 모두가 차분한 마음으로 보다 행복하고 건강한 새해가 찾아오기를 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