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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옛날에 저랬는데"…조훈현이 본 '조훈현' 이병헌

바둑이 최고의 두뇌 스포츠로 추앙받던 1990년대, 지금의 김연아나 손흥민과 같은 스포츠 스타들처럼 전 세계가 인정한 바둑 레전드 조훈현 국수(國手·바둑, 장기, 궁도 따위의 기예가 나라에서 으뜸가는 사람)가 있었다.
 
조훈현 국수는 1962년 10월 9세 때 최연소 입단의 기록을 세운 후 세계 바둑계 최초 전관왕은 물론 세계 최초 바둑 국제기전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연출을 맡은 김형주 감독은 "지금의 e스포츠 인기만큼이나 당시 바둑의 인기는 대단했다. 조훈현과 이창호의 라이벌 관계는 총칼만 없을 뿐, 치열하고도 처절한 승부였다"라고 했다.
 
실제로 조훈현과 이창호의 대국은 당시 스포츠 신문 1면이나 뉴스 방송에서도 메인뉴스로 다뤄질 만큼 화제성이 남다른 대결이었다. '승부'는 바로 그 대결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바둑 레전드 조훈현(이병헌)이 제자와의 대결에서 패한 후 타고난 승부사 기질로 다시 한번 정상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를 본 조훈현 국수는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아, 저럴 때 저랬었나 하고. 이병헌 배우가 굉장히 연기를 잘해줘서 뜻은 잘 전달이 된 것 같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과연 그는 '승부'를 통해 '조훈현'의 어떤 모습을 마주했을까. 다음은 '승부' 측이 전한 일문일답이다.
 

▷ 바둑계를 뒤흔든 세기의 대결, 사제지간 이야기에 대한 영화화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하다.
 
처음엔 과연 이 바둑을, 이 얘기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이냐 생각했다. 사실 바둑 자체는 그냥 앉아서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거라 그려 내기가 굉장히 힘들다. 다른 운동 경기라든가, 예를 들어 격투기 같은 종목은 그리기가 쉬운데, 바둑은 머릿속에서 진행이 되기 때문에 그걸 끄집어내야 하는 종목이다. 난 어떻게 이게 이야깃거리가 되나 그런 게 걱정이 됐고, 두 번째는 과연 이게 인물의 이름도 내 이름으로 나가는데 과연 반응이 어떨까 그게 제일 걱정이 됐다.
 
▷ 이병헌은 조훈현 국수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 국수의 업적과 이야기뿐만 아니라 패션, 습관 등까지 많이 찾아보고 공부했다고 한다. 이병헌이 연기한 조훈현은 어땠나?
 
사실 바둑이란 게, 이게 참 그려 내기가 힘들다. 바둑이 내면적이지, 외면적인 건 아니다. 그런데도 보면 나를 많이 나타냈다. '어? 이거 내가 옛날에 저랬는데? 저런 분위기였는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의 분위기라든가, 거기에 알맞게 연기하셨다는 거는 대단한 명연기라고 생각한다.
 
▷ 영화에서 표현된 조훈현과 실제 조훈현의 가장 닮은 부분과 다른 부분을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
 
내가 스승님에게 배운 게 있다. 그걸 그대로 이창호에게 물려준 건데, 스승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 길로 가게끔 이끌어주는 거다. 영화를 보니까 야단도 치고 하는데, 그건 영화니까 그렇고 실제로는 아니다. 이창호가 알아서 저렇게 컸고 알아서 잘한 거지, 내가 저렇게 잘 가르친 건 아니다.
 

▷ 사제지간의 대국을 스크린으로 본 소감도 궁금하다.
 
영화를 보니까 옛날 생각이 떠오르더라. 사실 거의 비슷하게 그려냈다. 경기에서 졌을 때 아픔이라든가, 또 싸울 때 아픔이라든가. 그런 게 사실 좀 나로서는 저걸 어떻게 그릴지, 어떻게 연기를 할 것인지 궁금했는데 아주 잘한 것 같다. 물론 뭐 영화가 실전과 똑같이 그리진 못 하지만, 대부분 잘 그려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만족한다.
 
▷ 전설이라는 수식어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최고의 바둑 기사이자 이 시대 최고의 승부사다. 승부의 첫째 조건은 '기세'이며, 승부사라면 어떤 승부에서도 자신만만한 기세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2025년의 조훈현 국수도 여전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나?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섰기 때문에 생각이 조금 다르다. 그때는 사실 최정상을 위해서만 공부했고, 싸워왔고, 젊었으니까 그런 자신도 있었다. 해야만 했기 때문에 했지만, 그래도 지금 젊은 사람한테는 패기라든가 공부라든가, 노력하는 건 권하고 싶다. 쓸데없는 이야기 같을진 모르지만 결국은 무언가는 도움이 되더라. 그래서 뭐든지 배우고 노력하다 보면 전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조훈현 국수가 이창호 국수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것처럼, 이창호 국수 역시 조훈현 국수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돌이켜봤을 때 한 인간으로서, 또 동료이자 후배 바둑 기사로서 어떤 영향을 받았나?
 
일단 내가 뭘 가르친 것도 없는데, 세계에서 바둑으로 일인자가 됐다. 그건 정말 내가 아무리 가르쳤다고 해도 본인이 노력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으면 될 수 없다. 그런 사람의 스승인 내가 더 고맙게 생각한다. 또 내가 생각하기에는 남한테 욕은 안 먹는 거 같다. 제자가 욕먹으면, 본인도 그렇지만 스승으로서는 사실 잘못 가르친 거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욕먹지 않는 제자가 됐고, 또 본인이 잘해서 일인자가 돼줘서 그걸로 만족해야 하지 않나 싶다.

 
▷ "젊었을 때는 정상을 지키기 위해 험한 승부를 마다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승부를 떠났다. 바둑을 통해서 내 인생을 살 뿐이다"라고 했다. 바둑을 통해서 배운 인생의 태도와 깨달음은 무엇인가?
 
깨달음이라는 게 끝이 없다. '여기까지'라는 건 없는 것 같다. 하다 보면 계속해서 앞으로 가는 거고, 전진하는 거다. 그러니까 계속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이제 더 많은 어려움도 닥치고, 거기를 돌파하면 또 다른 벽에 막힌다. 또 그걸 돌파하면 올라가야 한다. 사람 나름의 벽이 있고 그 한계가 있는 거다. 그러니까 끝없이 배우는 거다.
 
그래서 내 바람은 앞으로는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지만, 내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과연 얼마큼 깨달았느냐, 어떤 인생을 살아왔느냐, 그게 가장 궁금하다. 하루를 살더라도, 1년을, 10년을 살더라도 계속 나는 앞으로 내 길로 전진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있다.
 
▷ 국수의 모토인 '무심'(無心·사사로운 욕심을 비워내고, 평상심으로 최선을 다한다)이라는 마음가짐에 대해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다.
 
사실 모든 일이 욕심이 많기에 사고가 많이 난다고 생각한다. 바둑도 이기겠다는 욕심, 또 조금 여기서 득을 봐야지 할 때 역전이 많이 된다. 그래서 평정심이라 할까. 평정심과 무심, 비슷한 이야기인데, 욕심을 내지 않고 정확히 그 상황을 바라봐야 한다. 바둑뿐만이 아니라 내 인생, 또 지금 현재 이 자리에서 내 상황이 어떤 것인지 그걸 정확히 봐야 한다.
 
사실 무심이라는 게 굉장히 어렵다. 제일 첫째가 욕심을 안 내고 내 현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것, 그게 무심인데 사람인 이상 쉽지가 않다. 살다 보면 자꾸 생각이 흔들린다. 그래서 뭐든 열심히 했을 때는 휘둘리지 말고 무심의 경지로 바라봐야 한다. 바둑이란 게 조화이지 않나. 세상도 조화다.

 
▷ 9살에 프로 입문 후 현재까지도 꾸준히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엄청난 지력과 체력이 필요한 일인데, 특별한 관리 비결이 있을까?
 
나는 등산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젊었을 때는 등산을 많이 했고, 지금은 걷기를 좋아해서 동네 한 바퀴 돌거나 뒷산 가는 정도로 체력을 유지한다. 모든 일이 첫째가 체력이다. 체력에서 정신력이 나오는 거다. 건강해야지 좋은 일도 생기고 일할 수 있다. 바둑도 체력이다. 또 체력에서 나오는 정신력 싸움이다. 그래서 이걸 최고조로 올려놔야지만 상대하고 싸울 수 있다. 이게 무너지면 질 수밖에 없고, 밑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
 
▷ 마지막으로 예비 관객들을 위해 영화 '승부'를 추천한다면?
 
나도 오늘 처음 봤지만 재미있고, 또 울리는 대목도 있다. 가슴에 느껴지는 것도 있다. 여러분께서도 많이 봐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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