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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초록조끼' 입고 광화문으로…광장 만든 '숨은 주역들'

'尹파면' 촉구 집회 현장의 숨은 일꾼들 비상행동 시민 '자원봉사단' 역할 빛나 집회 인파 관리에 도로 위 쓰레기 처리까지 '우측통행 해주세요' 목 터져라 외쳐 "하루 2만보 걸어도 힘들기보단 보람차" 철야 집회 참석자 위해 공간 내어준 향린교회 尹 석방 이후부터 파면까지 화장실, 쉼터 제공

"평일엔 퇴근하면 봉사단 조끼를 입고 광화문, 안국역 등으로 달려갔어요. 주말엔 광장으로 출근했고요. 광장에서 같은 '자봉이'들을 가족보다 자주 봤죠."

지난 9일 서울 지하철 시청역 인근에서 만난 안시정(35)씨는 지난 1월 11일부터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난 4일까지 '자봉이'로 활동했다. 자봉이는 윤 전 대통령 파면 촉구 집회에서 활동한 자원봉사단의 줄임말이다. 그는 "침낭에도 하계용, 동계용이 따로 있는 것을 아느냐"며 "동계용 침낭과 '낚시 방석' 두 장이면 한겨울 아스팔트도 버틸 만하다"고 웃음을 지었다.
 
CBS노컷뉴스는 12·3 내란 사태 이후 윤 전 대통령 파면 선고가 이뤄진 지난 4일까지 123일 동안, 광장에 설치된 무대 뒤편에서 제 역할을 해낸 사람들을 만났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비상행동) 시민 자원봉사단으로 활동한 안시정씨, 최정은(29)씨, 그리고 향린교회 한문덕 담임목사다.
 
이들은 인파관리를 위해 구호 대신 "우측으로 통행해 주세요"를 목이 터져라 외쳤고, 발언대에 오르는 대신 광장 인근에서 '시민 쉼터'를 운영했다. 손팻말을 드는 대신, 집회 물품을 제작했고 집회가 끝나면 광장에 남아 쓰레기를 치웠다.

"우측통행" 그들이 목 터져라 외쳐 만든 집회 질서시정씨에게 자원봉사단에 들어가게 된 계기를 묻자 "아스팔트 바닥이 너무 힘들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시정씨는 지난 1월 11일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윤 전 대통령 체포를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 중이었다. 철야 집회는 길었고, 1월의 밤은 추웠다.

"차가운 바닥에 앉아있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차라리 움직이면서 일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그 다음 주부터 자봉단에 참여했죠."

시정씨가 맡은 역할은 인파와 교통 관리, 화장실과 편의시설 안내, 집회 후 도로에 남은 쓰레기 줍기 등이었다.

"자봉단을 하면서 제일 많이 한 말은 '우측통행하세요', '횡단보도는 비워주세요', '빨간 불에는 건너시면 안 됩니다'였어요. 저 말을 500번 정도 하고 나면 집회가 끝나 있더라고요."


탄핵 반대집회 참가자들과의 충돌 등 위험 상황을 관리하는 일도 자원봉사단 몫이었다.

"극우 시위대가 광화문에서 시위를 끝내고 경복궁 주차장으로 갈 때 저희 시위 장소를 통과해야 하거든요. 하루는 윤 전 대통령 지지자 한 사람이 광주 혐오 발언을 하면서 지나갔는데 하필 그걸 광주에서 온 집회 참여자가 들어서 싸움이 벌어진 거예요. 두 분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려고 해서 제가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서 버틴 적도 있어요."

광장에서 묵묵히 현장을 관리할 때, 어떤 시민들은 시정씨도 모르는 새 조끼 주머니에 핫팩, 간식거리를 꽂아 넣고는 '고맙다'고 말했다. 그럴 때면 뿌듯함에 웃음꽃이 피었지만 가슴이 아리는 순간도있었다.

"인파관리에서 제일 중요한 건 병목현상 관리거든요. 사람이 몰린 순간에 시민들이 자봉단 말을 안 따르면 또 다른 시민들이 도와줬어요. 그때 시민들이 '이태원 참사! 이태원 참사!'라고 외치니까 모두들 참사를 기억하고 질서를 찾도록 움직이더라고요. 그때 참 마음이 아팠어요."

집회 '파수꾼' 역할에 하루 2만보 걸었지만…"보람 있다" 정은씨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다음날부터 윤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나섰던 정은씨가 자원봉사에 뛰어든 계기는 서울 서초구 남태령고개에서의 경험이었다.

"남태령 1차 집회는 누구도 예상 못 한 철야집회였어요. 준비된 것 없이 허허벌판 아스팔트 위에서 밤을 새웠죠. 그때 물품을 나눠주느라 뛰어다니시는 분들을 보고, 다음 집회 때는 '내가 가서 왔다 갔다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로 인파 관리 역할을 맡은 정은씨는 자원봉사단으로 활동하는 동안 하루 평균 1만 5천~2만 보를 걸었다. 근속 3년을 기념해 회사에서 준 '2주 휴가'도 광장에서 보냈다. '비상행동 자원봉사단'이라고 적힌 뱃지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발언이나 무대를 볼 시간은 거의 없었지만, 힘들다는 생각보단 보람을 느꼈다. 정은씨는 오는 16일 세월호 참사 11주기 등 또 다른 현장에서 이 보람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비상 행동이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앞으로 활동을 이어간다고 해요. 저는 가능하면 (시민 자원봉사단으로) 오래 참여를 하고 싶어요. 어떤 단체에 소속되기 보다는 일반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려고요."

농성자들의 밤을 지켜준 교회…광장의 쉼터가 되다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날, 각종 시민사회 단체 인사들이 모인 곳은 종로구 향린교회였다. 그 중심에 있던 한문덕 담임목사를 만났다.

"시국 회의할 장소를 찾는다는 애기를 듣고 '그럼 우리 교회에서 하셔라'라고 제안했어요. 지금도 비상행동(현 명칭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 회의는 대부분 저희 교회에서 해요."

향린교회는 1987년 6월 항쟁을 이끌었던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발기인 대회가 열리는 등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배경 중 한 곳이다. 윤 전 대통령이 석방된 지난 8일부터 비상행동은 철야 집회를 시작했고, 그 다음날인 9일부터 향린교회 문은 24시간 내내 닫히지 않았다. 교회 건물을 철야 집회 참여자들을 위한 쉼터로 개방했기 때문이다.

"1층은 남성, 4층은 여성, 5층은 성중립방으로 나눠 운영했어요.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숙직 팀을 구성해서 교대로 관리했어요. 개방 첫날은 3명이 찾았지만 마지막 날에는 31명까지 이용했죠. 오셔서 화장실도 이용하고, 쪽잠도 주무시고, 컵라면도 드시고 쉬어가셨어요."

한문덕 목사와 향린교회 성도들은 경복궁 동십자각 광장 한켠에 부스를 세우고 참여자들에게 '탄핵 꽈배기' 등 간식을 나눠주기도 했다.

"어떤 분은 놀라시더라고요. '교회가 이런 일도 하느냐'면서요."
 
한 목사는 기독교계 대표적 극우 세력으로 꼽히는 사랑제일교회 전광훈씨가 기독교계를 과잉 대표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제 거기(전광훈씨가 주도하는 광화문 광장) 집회를 볼 때 가장 힘든 점은 아멘과 욕이 동시에 나온다는 거예요. 타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타자를 혐오 세력으로 규정해서 낙인 찍는 방식으로 자기 세력 규합을 도모하는 것은 기독교적이지 않아요."

헌법재판소는 비상계엄령 선포 당시 국회가 발 빠르게 계엄을 해제할 수 있었던 이유로 계엄이 선포된 즉시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의 저항을 꼽았다. 그리고 한밤 중 국회 앞에서 계엄군에 맞선 시민들의 용기는 여의도, 광화문, 한남동, 안국역 광장으로 이어졌다.

"피청구인의 국회 통제 등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을 가결시킬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으므로…"(윤 전 대통령 탄핵 결정문 中)

정은씨도 인터뷰 내내 그 당시 시민들의 용기를 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3일 국회로 뛰어나가셨던 분들이 아니었으면, 그 장면이 저한테 인상이 남지 않았으면, 저도 그냥 퇴근하고 집에 가면서 뉴스나 보며 '어떻게 됐나' 하고 있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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