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퇴임을 앞두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 대한 소회를 내비쳤다. 문 전 재판관은 '만장일치'를 이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며, 결국 '사회적 통합'을 호소하는 선고문을 작성하기 위해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설명했다.
헌재의 주요 기능인 '사회 통합'은 문 전 재판관의 언급으로 다시 주목되고 있다. 그는 재판관 구성의 다양화, 더 깊은 대화, 결정에 대한 존중이 이뤄질 때 헌재가 사회 통합의 헌법상 책무를 다할 수 있다는 당부도 남겼다. 헌재의 선고 이후, 그 의미를 되짚는 일은 우리 사회의 몫으로 남았다.
'尹 선고' 장고 힌트 남긴 문형배…'관용과 자제', '통합'퇴임을 하루 앞둔 지난 17일 문 전 재판관은 인하대학교 특강 연단에 섰다. 이 자리에서 그는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에 대한 소회를 처음으로 밝혔다.
헌재는 지난 4일 탄핵소추 111일만에 윤 전 대통령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면했다. 대통령 탄핵 사건 중 역대 최장 심리기간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린 만큼 여러 우려도 속출했다. 급기야 각종 추측과 헌재에 대한 비판과 공격까지 이어졌다.
할 말이 많을 수 있었던 헌재였지만 묵묵히 제 갈 길을 간 끝에 선고에 이르렀다. 선고 이후에도 평의 과정은 모두 비공개로 부쳐졌다.
문 전 재판관이 던져준 힌트는 '관용과 자제', '통합'이었다. 그는 "탄핵소추가 야당의 권한이다, 문제없다 이렇게 얘기하고 그렇다면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권한 아니냐고 하는데 그렇게는 답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관용과 자제를 뛰어넘었느냐 아니냐, 현재까지 탄핵소추는 그걸 넘지 않았고 비상계엄은 그걸 넘었다는 게 우리(헌재) 판단"이라고 했다. 서로 간의 권한 다툼을 따지는 게 아니라 '관용과 자제'를 기준으로 논의를 거듭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문 전 재판관은 '통합'과 관련해선 "야당에 적용되는 권리가 여당에도 적용돼야 하고 여당에 인정되는 절제가 야당에도 인정돼야 그것이 통합"이라며 "나에게 적용되는 원칙과 너에게 적용되는 원칙이 다르면 어떻게 통합이 되겠는가"라고 밝혔다.
실제로 문 전 재판관은 윤 전 대통령 선고 당시 "국회는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했어야 한다"고 국회 측을 나무랐다. 이어 "그러나 피청구인(윤 전 대통령)과 국회 사이에 발생한 대립은 일방의 책임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고, 이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돼야 할 정치의 문제"라고 윤 전 대통령을 지적했다.
문 전 재판관은 "통합을 우리가 좀 고수해 보자. 그게 탄핵선고문의 제목"이라며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렸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결론, '사회적 통합'을 이뤄내기 위한 재판관들의 치열한 토론이 장고의 원인으로 읽히는 부분이다.
아울러 문 전 재판관은 만장일치를 이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며 "'토론을 하면 결국 현재의 결론에 이른다'는 게 저의 처음 생각이었다"라고도 덧붙였다.
문 전 재판관과 함께 퇴임한 이미선 전 재판관은 퇴임사에서 "매 사건마다 저울의 균형추를 제대로 맞추고 있는지 고민했고, 때로는 그 저울이 놓인 곳이 기울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근심하기도 했다"며 "그 저울의 무게로 마음이 짓눌려 힘든 날도 있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다시 주목 받는 '사회 통합'…"결정에 대한 존중 이뤄져야" 문 전 재판관의 언급으로 헌재의 주요 기능인 '사회 통합'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헌재의 역할이 단순히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등을 내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전달됐기 때문이다.
헌재가 지난 2008년 발간한 헌법재판실무제요 제1판에는 "헌재는 정치세력들의 힘의 투쟁을 대신해 헌법질서 내에서 평화적으로 헌법적 가치를 실현시키는 최후보루로 기능함으로써 국가가 위기에 봉착하거나 저항권이 행사되기 전에 합법적인 예방창구를 열어줘 정치적 대립풍토를 순화시키는 촉매의 역할을 한다"며 "또한 사회통합의 동기를 더더욱 활성화시켜 주는 기능을 한다"고 명시돼 있다.
아울러 헌재는 헌법의 이념과 가치를 바탕으로 국민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거나 설득될 수밖에 없는 결정을 내려 자연스럽게 사회통합의 기능을 실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게 헌법학계의 설명이다.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는 결정을 내리는 것만으로 그 역할이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미치는 영향 역시 고려하게 돼 있다. 헌재가 사회통합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과제"라며 "헌재의 결정이 고도로 대립되는 상황에서 내려질 경우 더 큰 사회적 분쟁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분위기를 완화시키고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고 밝혔다.
실제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두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큰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다행히 별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 같은 맥락에서 헌재가 가장 극심한 갈등을 빚던 시점을 지나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편 문 전 재판관은 퇴임사에서 "재판관 구성의 다양화, 더 깊은 대화, 결정에 대한 존중이 이루어질 때 헌법재판소는 사회통합의 헌법상 책무를 다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이중 특히 '결정에 대한 존중'은 울림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헌재는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것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으나, 최상목 당시 권한대행과 한덕수 권한대행은 결정을 바로 따르지 않으며 파장이 일었다. 파면 선고를 받은 윤 전 대통령은 승복 입장 없이 지지층만 향하는 결집 메시지를 던지고, 형사재판에서 헌재의 결정을 모두 부인하는 입장을 취하며 '궤변 논란'을 빚기도 했다.
헌법연구관 출신 한 변호사는 "헌재의 판단은 그 결정이 담고 있는 의미까지 해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적어도 형사재판 첫 변론에서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의 모습에서는 이 같은 노력이 전혀 엿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