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구시에 거주하며 지난해 7월 치매 판정을 받고 올해 수술치료까지 받은 70대 A씨. 그에게 D건강식품업체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무료체험이라며 집으로 '침향단'을 보내주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결국 주소를 알려준 A씨의 집에는 '침향단'이 배송됐습니다. 이후 집 한구석에 두고 한동안 보관을 하다가 어느날 저녁식사 이후 섭취를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두통과 알레르기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고 병원에 내원했습니다. A씨의 아들은 치매 환자가 '침향단'을 복용해 부작용이 생긴 것이라고 판단해 법적 대응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2. 경기 남양주 팔당 부근에 거주하는 80대 B씨. 마찬가지로 D건강식품업체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침향단' 무료체험을 권유하며 체험판을 보내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며칠 뒤 B씨의 집에는 고가의 본품이 체험판과 함께 도착했고, 이후 60만원 상당의 본품 금액을 입금하라는 '내용증명'도 받았습니다. B씨의 아들은 업체측이 연로한 어머니를 상대로 속인 것이라며 분개했습니다.
건강식품 전화권유판매로 필요없는 상품을 떠안게 된 노인들의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일부 업체들은 판단력이 흐려진 노인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설득과 요구 끝에 주소를 받아내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20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한 건강식품업체는 노인들에게 '침향단 무료체험'을 시켜주겠다며 전화를 걸어 체험판과 함께 고가의 본품까지 집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영업을 했다. 이후 반품이 어려워질 경우 업체는 결제를 촉구했다.
실제 일부 노인들은 고가의 본품을 체험판으로 착각해 직접 먹거나 주변에 나눠줬다. 이런 경우 회사는 반품이 불가하다면서 수십만원의 결재를 요구했고, 통화가 어려운 일부 노인들에게는 '내용증명'까지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치매 어머니에 '전화권유판매'…건강식품 먹고 피부병까지?
대구시에 거주하는 박정식(가명)씨는 D건강식품업체가 치매 환자인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무료체험 침향단'을 보낸 사실을 최근 알게 되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해 치매 판정을 받아 수술치료까지 한 어머니가 '침향단'을 섭취하고 두통, 가려움, 알레르기, 설사 등의 부작용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어머니께서 '침향단'을 보내지 말라고 하셨다는데 (업체측 요구에) 주소를 불러 주신 것 같다"며 "어머니는 치매기가 있으셔서 '침향단'을 숨겨놓고 계시다가, 지난달 30일 저녁식사 이후에 섭취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나 '침향단'을 섭취하고 오히려 어머니 건강이 나빠졌다고 판단한 박씨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내원했고, 이후 남은 '침향단'을 반품하며 업체측에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항정신병약의 경우 다른 건강식품과 함께 복용하면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 업체측이 안정성을 충분히 검증하지 않고 판매를 했다는 주장이다.
박씨는 반품 상품을 수거하기 위해 방문한 우체국 직원이 최근 '침향단' 반품 건이 많아졌다고 했다며 또다른 피해를 우려했다.
이 우체국 직원은 "경북 성주군에서 근무했었는데 당시에도 한 노인이 업체측에 송금하려고 하길래 말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시골사는 80대 어머니에 '내용증명 발송'…"60여만원 청구"
D건강식품업체의 '침향단' 사례는 온라인상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 4일 온라인상에 'OOOO 침향단 무료체험'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50대 김기와(가명)씨도 80대 고령의 어머니가 비슷한 유형의 강매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씨가 올린 글에 따르면 시골 마을에 사는 80대 어머니는 지난해 D건강식품업체의 전화영업에 넘어갔다. 김씨에 따르면 업체측은 '침향단 무료체험' 상품과 함께 고가의 본품을 보내고, 이후 내용증명을 통해 60여만원을 청구했다.
김씨는 CBS노컷뉴스에 "(내용증명을 받고) 업체측에 유료였으면 침향단을 받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내용증명을 보냈다"며 "업체측은 침향단을 왜 받았냐는 식으로만 대응하며 황당한 소리를 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업체측이 물건을 발송했다고 '택배용지'를 보내서 강력히 항의하기도 했다"며 "소비자원에 전화를 해봤지만 도움을 받지는 못했으며, 업체측은 등기번호도 없는 '내용증명'을 어머니 집에 보내며 돈을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김씨가 공개한 'OO침향 반품 및 결제 요청'이라는 제목의 내용증명에 따르면 업체측은 "2024년 체험분 및 본품을 귀하의 동의하에 체험 분만 드시는 조건으로 선배송 택배로 보내드렸다"고 썼다.
그러나 "당사 제품을 받으신 이후 연락 및 반품 또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발신인은 위 제품에 반품 및 결제를 촉구하며 수신인은 본 내용증명을 수령하는 즉시 아래의 전화번호 및 지정계좌로 입금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그 아래에는 계좌번호와 전화번호가 남겨져 있었다.
업체측 "본품 뜯지 말라고 전단지"…이런 사례 계속 발생하는 이유는?
이와 관련해 업체측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처음에 (침향단 무료체험) 동의를 할 때 본품이 같이 나간다고 안내를 드리고 있다"며 "택배 상자를 열어보면 본품을 구매하지 않을 경우 절대 뜯지 말라고 전단지가 들어 있다"고 해명했다.
일부 노인에게 내용증명을 보낸 이유에 대해선 "대부분 연락이 안 되는 분들한테 (내용증명을) 보내드리고 있고, 저희가 아는 것은 연락처하고 주소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 "반품을 할 건지, 결제를 할 건지 통화가 안 돼 며칠 동안 지켜본다. 기간을 두고 도저히 안 되면, 아는 건 주소밖에 없으니 우편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사례가 계속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신현두 한국소비자협회 대표는 규제 사각지대와 대상자의 취약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 대표는 "전화영업은 녹취만 조작해도 '자발적 계약'처럼 보일 수 있어 법적으로 증명하기 어렵고, 방문판매는 일정 규모 이하 영세 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이 느슨한 편"이라며 "고령층은 기술적 방어 수단이 부족하고, 사회적 단절 때문에 전화에 더 잘 응답한다"고 밝혔다.
그는 '가족 단위의 예방조치'를 위해 부모님과의 정기적인 대화가 필요하다면서 "부모님께 '모르는 번호는 전화 받지 마세요'라고 가볍게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예방효과가 있으며, 실제 피해 사례를 간단히 설명해드리면 경각심도 생길 것"이라고 전했다.
본품 개봉하면 돈 지불 무조건 해야 할까?
본품을 개봉했더라도 현행법상 보호받을 수 있는 근거는 존재한다. 전자상거래법 제17조 및 제18조에 따르면 소비자는 물건을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청약 철회를 할 수 있으며, 개봉 여부만으로 철회를 막을 수 없다.
특히 '사은품을 가장한 본품 강매'는 불공정거래 행위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실제 공정거래위원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이같은 판매는 부당한 소비자 유인 등으로 보고 있다.
혹시 한국소비자원에서 도움을 못 받았다면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해(1372 소비자상담센터) 불공정 행위로 제재가 가능하다. 해당 업체가 카드 결제나 금융 거래를 유도한 경우엔 금융감독원 금융피해 상담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한편 한국소비자원이 공개한 '최근 5년간(2020~2024) 60세 이상 전화권유판매 관련 소비자 상담 접수 현황'에 따르면, 연도별로 상담건 수는 매년 5천건이 넘으며, 지난 18일 기준 최근 5년간 총 상담 건수는 2만9689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