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잇따라 중국에 무역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압박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장기전을 준비하는 모양새다.
"중국과 매일 협상중"…연일 낙관론 펴는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행정명령 서명식 후 취재진과의 질의응답에서 취재진이 '얼마나 빨리 중국에 대한 관세율을 내릴 수 있느냐'고 묻자 "그건 중국에 달렸다"고 답했다.
이어 "향후 2~3주 안에 관세율을 (새로) 정할 것"이라며 "(이 새로운 관세율에는) 중국이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과의 협상이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그렇다. 매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에도 중국과의 무역협상 상황을 묻는 질문에 "지금 (미국은) 황금시대이고 중국은 그것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한다"라며 "우리는 중국과 잘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중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강하게 나갈 것이냐는 질문에는 "아니다. 우리는 매우 잘 대해 줄 것이며 그들도 매우 좋게 행동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겠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협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대중국 관세율에 대해서는 "(현재의) 145%는 매우 높다"라면서 "(협상시 관세율이) 그 정도 높게 있지는 않을 것이며 그것은 매우 상당히 내려갈 것이다. 그러나 제로(0%)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에는 "우리는 중국과 대화 중이다. 그들이 수 차례 연락해왔다"면서 중국과의 무역협상 타결 시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3~4주 정도로 생각한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도 23일 한 대담에서 미중간 관세문제에 대해 "양측 모두 그것이 지속 가능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대중 관세율 인하를 시사했다.
그는 "이는 무역 금수 조치에 상응하는 것이며, 양국간 무역 중단은 양국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내가 이전에 말했지만 (미중간) 빅딜의 기회는 있다"고 낙관론을 폈다.
협상 시작 안했다는데…시진핑 나서라는 압박?
다만, 관세 협상을 총괄하고 있는 베선트 장관은 연이틀 중국과의 협상이 아직 공식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과 대화 중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배치되는 입장이다.
따라서 중국과의 무역협상과 관련한 "대화 중", "매일 (협상)하고 있다"등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실제로 양국간 무역협상이 원할하게 진행중이라기 보다는 중국에 협상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압박으로 해석된다.
관련해 다국적로펌 커빙턴앤벌링의 크리스토퍼 애덤스는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중 협상은 기존 구성된 틀(협상팀)이 가동되거나 두 정상 간 신호가 있을 때 시작된다"라며 협상의 전제조건 두가지를 꼽았다.
현재 양국간 가동되고 있는 협상팀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이라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두 정상 간 신호', 즉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직접 협상을 벌이기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라이언 하스는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그랬듯이 시진핑 주석을 직접 상대하고 싶어 한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대화는 무역협상이라기 보다는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포함해 두 정상의 직접 접촉을 위한 사전 물밑작업을 위한 대화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역임한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는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에 대해 "톱다운 외교를 하겠다라는 것"이라며 "정상회담 날짜만 정해라. 그럼 내가 가서 해결한다(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톱다운? 마지막에 등장 원하는 시진핑
트럼프 대통령이 이렇게 시 주석을 향해 '직접 나서라'는 시그널을 계속해서 보내고 있지만 중국 측은 양국의 무역협상에 대해 원론적인 입장을 밝히는 것외에는 별다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정례 브리핑에서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질문에 "미국이 시작한 관세 전쟁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매우 명확하다"라며 "대화의 문은 활짝 열려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진정으로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위협과 협박을 중단하고 평등과 존중, 호혜의 기초 위에서 중국과 대화해야 한다"며 무역협상 상황과 방식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이는 '톱다운'(하향식 의사결정) 방식의 담판을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시 주석은 실무 협상을 거쳐 사실상 최종 단계까지 협상이 마무리된 뒤에야 직접 등장하는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기다 최고지도자의 권위와 체면을 중요시하는 중국 체제의 특성상 시 주석이 처음부터 나섰다가 중국에 불리한 협상 결과가 나오거나, 아무런 성과없이 협상이 결렬되는 장면이 연출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이를 두고 브루킹스연구소의 하스는 "중국은 젤렌스키 사건 이후 시 주석이 세계의 눈앞에서 창피당하거나 밀리거나 실패하는 합의의 일부가 될 위험을 매우 경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차 무역전쟁 준비해온 중국 '시간은 우리편'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이미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한차례 경험한 중국이 그사이 2차 무역전쟁을 대비해왔다는 점도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협상을 서두르지 않는 배경으로 보인다.
실제로 중국의 전체 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트럼프 1기 당시인 2018년 19.3%에서 지난해 14.7%로 크게 낮아지는 등 중국은 수출 시장 다변화로 대미 수출 의존도를 낮추는데 주력해 왔다.
또, 미국의 관세 인상에 대비한 보복 조치도 치밀하게 준비했는데 대표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지지기반인 미국 농가에 타격을 주기 위해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기 전부터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줄여왔다.
여기다 최근 미국 보잉의 항공기 인수를 중단하는 등 미국 기업을 정조준한 보복조치를 잇따라 내놓는가 하면 첨단 산업의 핵심 원자재인 희토류 수출을 통제하며 미국 산업계를 좌불안석으로 만들고 있다.
이와함께 임기가 4년으로 정해진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시 주석은 장기집권 기반을 구축했다는 점, 그리고 체제 특성상 무역전쟁으로 인한 불만을 어느정도 통제 가능하다는 점 등도 중국이 미국과의 협상을 서두르지 않는 배경으로 꼽힌다.
다만, 이미 부동산 시장의 장기침체와 내수 부진 등으로 경기가 위축된 상황에서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장기화되며 경제적 피해가 보다 커질 경우 중국내에서도 체제에 대한 불만이 쌓여갈 수 있다.
결국 중국 역시 현 상태를 무작정 끌고갈 만큼 여유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에서 머지않은 시점에 미중 양측이 협상장에서 머리를 맞대는 장면이 연출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