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서 땅 꺼짐(싱크홀) 사고가 잇따르며 시민 불안이 커지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강동구, 마포구, 중랑구 등에서 5건의 싱크홀이 발생했고, 이 가운데 하나는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싱크홀 사고 원인으로 연약한 지반과 부실한 지하공사 관리를 지목하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선 철저한 지반 조사와 시공 관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서울에서만 벌써 5번째…시민들 불안은 여전
강동구 명일동 싱크홀 현장 도로 복구가 며칠 앞으로 다가온 15일, 강동구 대명초등학교 사거리는 복구 작업이 한창이었다. 초등학생들의 시끌벅적한 웃음소리와 발소리가 들리지만 이는 복구 현장에서 묻혔다. 공사장에서는 크레인이 사람 키보다 높은 흙더미를 연신 나르고 있었고, 근처 주유소에는 '땅 꺼짐으로 진입을 통제합니다. 우회하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보행자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차가 다니지 않는 탓에 가끔 보이는 시민들은 횡단보도 빨간불에도 길을 건넜다.
초등학생 아이를 둔 40대 김모씨는 "아이가 원래 등하교를 혼자 하는데 무섭다고 데려다달라고 한다"며 "이런 일이 또 일어나면 어떡하지 걱정이 돼 9호선과 고속도로 지하화하는 그쪽 근처로는 무서워서 못 간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시민들은 조금만 전조증상이 보여도 불안해한다. 대명초 사거리 인근 아파트에 거주하는 송수연(44)씨는 "지역 커뮤니티 같은 데에 '구멍이 뚫려있는데 이것도 싱크홀 전조증상인가요'라는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다고 해서 염려가 된다"며 "싱크홀이 집 근처여서 출근할 때 그 길로 다니지 못하고 돌아서 가야하는데 가족 중에 누군가 혹시나 희생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어서 남일 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고 지점을 자주 지나다녔다는 오토바이 배달기사 A씨도 "하루에 2~3번씩 지나갔던 길인데 딱 그 자리에서 사고가 났다"며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실제 올해 서울에서만 5건의 싱크홀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24일 서울 강동구 대명초 인근 사거리에는 직경 20m 대형 싱크홀이 발생해 30대 남성 1명이 숨지고 40대 여성이 다쳤다. 불과 이틀 뒤인 지난 2일에는 강동구 길동 신명초등학교 인근 교차로에서 직경 20cm, 깊이 50cm 규모의 구멍이 생겼다. 지난 13일에는 강동구 천호동 강동역 1번 출구 인근 횡단보도와 마포구 아현동 애오개역 2번 출구 근처에서 각각 직경 20cm, 지름 40cm·깊이 1.3m의 싱크홀이 확인됐다. 이어 15일에는 중랑구청 사거리에서도 가로 세로 각 40cm, 깊이 1m 가량의 땅꺼짐이 발생했다.
도로 균열과 아스팔트 침하를 싱크홀로 오해해 신고가 접수되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 관악구 삼성동 재개발구역 도로에서 지반이 꺼진 것 같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과 소방이 출동했지만 단순 도로 균열로 확인됐으며 같은날 시청역 인근 도로에서도 지반 침하 신고가 접수됐으나 아스팔트 변형으로 판명났다. 전날에도 압구정역과 돌곶이역 인근에서 싱크홀 신고가 동시에 접수됐지만 각각 임시 포장된 도로가 내려앉은 현상과 포트홀 발생으로 확인됐으며 실제 싱크홀은 아니었다.
"싱크홀은 인재"… 지반조사·시공관리 철저해야전문가들은 최근 잇따르고 있는 싱크홀 사고의 원인으로 연약한 지반과 지하공사 과정에서의 미흡한 시공 관리를 꼽는다.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박창근 교수는 "강동구 같은 경우 예전에 한강이었던 곳이어서 (모래와 자갈로 매립된) 연약층이 많이 발달돼 싱크홀이 발생할 수 있는 자연조건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며 "지하수가 공사장으로 들어오면서 주위에 있는 모래, 흙을 긁는데 이게 계속되면 땅 속에 빈 공간이 발생한다. 지하터널 공사를 할 때 지하수가 못 들어오게끔 차단을 하지 못한다면 흙과 지하수가 한꺼번에 공사장으로 들어와 싱크홀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싱크홀은 100% 인재다. 지하에 공사를 안 하면 싱크홀이 발생할 여지가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연세대학교 건설환경공학과 조원철 명예교수 또한 땅꺼짐의 원인으로 "강동구 등은 한강이었다가 매립된 곳인데 주변에 공사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물은 물귀신 성질을 발휘하기 때문에 흙을 끌고 가면서 흐른다. 그래서 땅 속에 구멍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사라는 것은 땅을 파는 것인데, 수만 년 동안 단단했던 땅도 파면 약해지고 물이 잘 흐른다"며 "공사가 마무리된 곳에서는 흙을 다시 채우는 '되메우기'를 하는데 메꿀 때 원칙대로 잘 다져서 메운다면 싱크홀을 막거나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노후 하수관은 보조적인 원인으로 지적된다.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최명기 교수는 "땅 꺼짐 크기가 크지 않은 것은 상하수도관 노후화에 의해 파열됐을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강동구 명일동 같은 경우는 9호선 공사가 진행되며 지하 터널이 붕괴돼 땅 꺼짐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 역시 "하수관이 원인일 수도 있다. 서울 시내에 땅 속 하수관이 수만km인데 물이 많이 샌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지난 15일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12월 기준 서울 하수관로 총연장 1만 866km 중 50년 이상 된 하수관로는 3300km로 전체의 30.4%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싱크홀 발생을 막기 위해선 지반에 대한 사전 조사와 시공 단계에서 철저한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최 교수는 "싱크홀이 발생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예측하는 게 가장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표투과레이더(GPR) 탐사를 하고 지표에 침하계를 설치해서 지표 침하나 지하수 변동을 확인해야 한다"며 "땅 속에 있는 3차원적인 지질도를 만들어 지하 공사에 따라 얼마나 영향을 받을지 예측하는 방법이 좋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지하 공사를 할 때 지하수의 흐름을 차단한다든지 (공사 장소가) 연약 지반인지 계량을 해서 설계하고, 토목 공사에 대한 감시 감독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