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을 칼에 비유하며 "계엄을 가치 중립적"이라며 계엄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지난 21일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두 번째 공판을 진행했다. 윤 전 대통령은 증인신문이 끝난 뒤 재판이 마무리될 때쯤 6분간 직접 발언했다.
윤 전 대통령은 "계엄이라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그 자체로는 가치 중립적인 것이고, 하나의 법적 수단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계엄을 '칼'에 비유해 "칼이 있어야 요리하고 나무를 베서 땔감도 쓰고 아픈 환자를 수술할 수도 있지만, 협박이나 상해, 살인 같은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며 "칼을 썼다고 해서 무조건 살인이라는 식으로 도식적으로 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에서 아무도 다치거나 유혈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것을 감안해 소수의 병력을 동원했다"며 "나라가 비상사태라는 걸 대통령이 선언하기 위한 방법은 오로지 계엄 선포밖엔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계엄을) 내란이란 관점에서 재판하려면 민주헌정질서를 무너뜨리고 모든 헌법기관을 동시에 무력화시키고 장악해 결국 장기 독재를 위한 친위 쿠데타라는 게 증명됐는지 관점에서 다뤄져야 한다"고도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은 1차 공판에서 '메시지 계엄'을 주장한 데 이어 2차 공판에서도 '가치 중립성'을 강조하며 계엄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작성에도 참여한 헌법학자 유승익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한동대 연구교수)은 22일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대통령이 '칼'을 그런 식으로 쓰면 위험한 것뿐 아니라 그런 칼을 쓸 수 없게 한 것이 헌법"이라며 "역사적으로도 대통령의 비상계엄권이라는 건 시효를 다 했다. 사실 박물관에 들어있어야 할 칼이고, 이에 대한 평가는 우리나라 헌정사에서 이미 끝났다"고 지적했다.
이미 지난 4일, 헌법재판소는 파면 결정문에서 윤 전 대통령의 계엄을 두고 "국가긴급권은 평상시의 헌법 질서에 따른 권력 행사 방법만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중대한 위기 상황에 대비해 헌법이 중대한 예외로서 인정한 비상수단"이므로 "헌법이 정한 국가긴급권의 발동 요건·사후통제 및 국가긴급권에 내재하는 본질적 한계는 엄격히 준수돼야 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계엄 선포가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행위라 하더라도 탄핵심판절차에서 그 헌법 및 법률 위반 여부를 심사할 수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계엄 선포가 '통치 행위'라는 윤 전 대통령의 주장을 일축했다.
또 윤 전 대통령은 "칼을 썼다고 해서 무조건 살인이라는 식으로 도식적으로 보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1차 공판에서 주장한 '메시지 계엄'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헌재는 결정문에서 "계엄에 수반해 행한 일련의 헌법 및 법률 위반 행위들 및 비상계엄의 선포는 그 본질상 경고에 그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 "계엄이 단순히 '경고성 계엄' 또는 '호소형 계엄'에 불과하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헌법의 규정 또는 국가긴급권의 본질상 비상계엄 선포를 정당화할 수 없는 사정들을 들어 계엄을 선포했다"며 "헌법 제77조 제1항 및 계엄법 제2조 제2항이 정한 위기 상황이 현실적으로 발생했다고 볼 근거가 없었음에도 현저히 비합리적이거나 자의적인 판단으로 계엄을 선포해 헌법을 위반했다"고 적시했다.
그동안 국가긴급권 행사와 관련해 박정희 전 대통령 유고를 이유로 1979년 10월 27일 선포된 계엄이 1981년 1월 24일 해제된 이후,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이 발령된 외에는 2024년 12월 3일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전까지 국가긴급권이 행사되지 않았다.
이러한 역사적인 맥락에서 헌재는 "이는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국민의 헌법 수호에 대한 의지가 확고해지면서 나타난 당연한 결과였다"며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역시 과거 국가긴급권의 발동이 헌법에 위반됨을 확인함으로써 입헌민주주의를 공고히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기에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정치적 목적으로 계엄을 선포함으로써 국가긴급권을 남용"한 것이며, 이로 인해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고 헌법 질서를 침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외신인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정치적 불확실성의 확대로 인한 외교적, 경제적 불이익 등을 고려할 때, 국익을 중대하게 해하였음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유승익 소장은 1, 2차 공판에 걸친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정당성' 주장을 두고 "전두환·노태우 판결을 보면 비상계엄 선포가 확대가 국헌 문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해진 경우면, 법원은 그 자체로 범죄행위에 위반하는지 심사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며 "비상계엄이라는 칼 자체가 국헌 문란이 목적이면 그 자체가 범죄행위란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 법과 내란 관련된 판례들을 종합해 봐도, 국회의원의 권한을 침해하고 국회의사당을 점거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내란이라는 법적 평가가 이미 끝났다"며 "(윤 전 대통령의) 내란에 대한 법적 평가나 판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