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살포기로 추정되는 도구를 화염방사기 삼아 서울 한복판 아파트에 불을 지른 방화 사건 피의자 이모(61)씨가 지난해 해당 아파트에서 이사를 가면서 '가만두지 않겠다'는 취지로 고성과 욕설을 했다고 A씨와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겪었던 방화 피해자의 가족이 22일 말했다. 경찰은 보복 범행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숨진 A씨의 범행 동기 등에 대해 수사 중이다.
경찰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소방 당국, 한국전기안전공사 등 유관 기관과 봉천동 아파트 화재 사건의 정확한 원인을 밝히기 위해 합동 감식과 부검을 진행했다.
방화범과 갈등 겪은 피해자 가족 "해코지 당할까봐 이사 가자 했는데"숨진 방화 피의자 이씨가 불을 지른 서울 관악구 봉천동 아파트 401호에선 전날 60대 여성 B씨가 전신화상을 입고 추락해 크게 다쳤다. 이씨는 작년 말까지 이 아파트 301호에 살며 401호에 혼자 살던 B씨와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겪은 것으로 파악됐다.
B씨의 남편 정씨는 이날 오전 CBS노컷뉴스와 만나 "(아내에게 이씨가) 해코지를 할 것 같으니 이사를 가자고 했는데, 아내는 이곳에서 20년 정도 살다 보니 정이 들었다며 다른 데 가서는 못 살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며 슬퍼했다. 피해자를 면회하기 위해 정씨와 함께 병원을 찾은 두 아들도 울분을 참지 못했다.
B씨의 둘째 아들인 정모(45)씨는 이날 오후 현장감식이 진행 중인 봉천동 아파트 1층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해 6~7월쯤부터 계속해서 (어머니 B씨에게서) 전화가 와 '아랫집에서 미친 짓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더라"라며 "(어머니에게) A씨가 '조용히 하라고 했는데, 왜 시끄럽게 하느냐'고 하는 게 반복적이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작년 9월 추석 때 어머니 B씨 집을 방문했다가 A씨와 다퉜던 기억도 꺼내놨다. 정씨는 "당시 A씨가 다짜고짜 올라와서 '아줌마 나와'라고 얘기했다"며 "그 때 A씨는 '조용히 하라는데 왜 시끄럽게 하느냐'며 어머니에게 언성을 높이면서 얘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아들인 정씨가 나서면서 몸싸움으로 번졌고, 경찰도 출동했지만 서로 처벌을 원치 않아 사건이 종결됐다는 설명이다.
이씨는 이후로도 계속해서 층간소음 문제를 제기하며 벽을 치는 등 과격한 행동을 했다고 한다. 정씨는 "추석 이후에 어머니가 혼자 계시다 보니 불안해서 어머니 집에 다시 한 번 왔다"며 "밤 12시에 누워 있는데 밑에서 망치로 (천장을) 툭툭 치는 것 같았다. 진동이 느껴졌다"고 했다.
특히 정씨는 작년 11월쯤 A씨가 인근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하면서 아파트를 향해 고성과 욕설을 했다는 어머니 B씨의 말도 전했다. 정씨는 "어머니가 당시 '(A씨가) 고성을 지르고 (이사를) 갔다'고 하더라"라며 "(피해 아파트에 대고) 가만두지 않겠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고 나갔다고 한다"고 말했다.
경찰, 현장감식·피의자 부검 진행…부검 1차 소견 "화재로 인한 사망"
서울 관악경찰서에 따르면 경찰과 소방당국은 22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봉천동 아파트 화재 현장에 대한 합동감식을 진행했다. 스프링클러 작동 여부, 불이 난 경위 등은 계속 조사 중이다. 추가 감식 여부나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숨진 피의자 이씨의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을 같은 날 실시했다. 부검 1차 소견에 따르면 이씨는 화재로 인한 사망으로 추정된다. 경찰 관계자는 구체적인 결과는 2~3주 뒤에 나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전날부터 피의자의 친인척 참고인 조사, 피의자 휴대폰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범행 동기와 계획 범행인지 여부 등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파악됐다.
한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서울 관악구 봉천동 아파트 화재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화재로 약 6343만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또 전날 오전 8시 17분부터 총 27건의 화재 신고가 접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