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의 한 LH아파트에서 10년 넘게 일한 미화·경비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해고될 위기에 처했다. 아파트를 위탁 운영하는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노동자들이 '근로계약 기간 3개월, 갱신은 없다'는 근로계약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노동자 14명은 "부당한 계약서"라며 서명을 거부하고 있다. 전문가는 "용역업체에 속해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10일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해당 아파트 미화·경비 노동자 등 총 14명은 지난해 7월 G업체로부터 '근로계약 갱신 기대권은 없는 것으로 한다'는 항목이 명시된 근로계약서를 받고 이에 반발하며 지금까지 서명하지 않고 있다.
미화반장 엄연지(60)씨는 지난 3월 27일 취재진과 만나 "지난해 7월 15일 업체가 바뀐 뒤 새로 온 소장님이 처음에는 한 달짜리 근로계약서를 제시하고 한 달 후에 계약 갱신은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며 "이에 반발해 3일 뒤에 노조에 가입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엄씨가 노조 가입 후 새로 받은 근로계약서에는 '을의 근로계약 기간은 2024년 7월부터 10월까지로 한다. 신규로 채용된 을은 채용된 날로부터 3개월간의 수습 기간을 두며, 근로계약 갱신 기대권은 없는 것으로 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었다.
엄씨는 "하루이틀 일한 사람들이 아닌데 이제 와서 업체가 바뀌었다고 수습 3개월, 그것마저도 계약 갱신이 없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호소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 계약 갱신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은 사람은 미화원 7명, 경비원 6명, 사무실 직원 1명으로 총 14명이다.
사무실 직원 1명은 새로운 소장이 온 날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통보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업체가 계약 갱신이 어렵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엄씨는 "이 업체는 전국에 20여 개가 넘는 LH아파트를 관리하고 있다"며 "업체가 관리하는 다른 LH 단지들은 전부 청소 용역을 따로 주고 있기 때문에 이곳도 그렇게 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엄 씨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LH가 나서서 고용승계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10년 넘게 일한 사람들 하루아침에 용역업체 바뀌었다고 고용승계를 해주지 않는 건 인정할 수 없다"며 "앞으로 용역업체가 또 바뀌면 이런 사태가 또 생길 수 있으니, LH가 용역업체와 계약을 할 때 고용승계를 하라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LH전북지부는 해당 용역업체가 확약서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에게 '계약 갱신이 없다'는 근로계약서를 제시했다고 말한다.
LH는 "주택관리업자 입찰공고 내용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미화·경비 노동자의 고용 승계유지를 확약한다'는 입찰참여자의 고용안정 이행확약서 제출 사항이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G업체는 "당시 7월에 부임했던 관리소장이 그러한 계약서를 제시한 것"이며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고 일이 커지자, 지금은 퇴사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이어 "11월 새로운 소장이 부임했고, 아직 근무조건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지난 3월 4일 '아파트 미화·경비 노동자 고용불안 해소'를 주제로 국회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용역업체가 변경될 때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고용승계를 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바 있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법률원)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아파트 경비나 미화 노동자뿐만 아니라 다른 빌딩, 공장 등에서 용역으로 일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용역업체가 변경될 때 이런 고용불안 문제가 생긴다"며 "가장 먼저 고용승계에 관한 법률제정이 이루어져야 하고, 오래전부터 이에 대해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파트 노동자 같은 경우에는 공동주택관리법이라고 하는 별도의 법률이 있으므로 거기에 고용승계 관련 조항을 넣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식대도 없고 열악한 쉼터까지…월급은 140만 원이 외에도 미화 노동자들은 근무 여건의 불만도 제기했다.
엄씨에 따르면 이들의 하루 근무 시간은 점심 휴게 시간을 제외한 5시간 30분, 급여는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해 한 달에 약 140만 원이다.
점심 식대는 없기 때문에 이들은 식비를 아끼기 위해 기존 업무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 점심으로 먹을 밥을 짓는다.
엄씨는 "우리는 시급을 올려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점심 밥값을 달라는 거다"며 "이 문제에 대해 LH는 용역업체 소관이다, 용역업체는 LH가 승인을 해줘야 한다 이렇게 서로 떠넘기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들의 쉼터 또한 열악했다.
계단을 통해 아파트 지하로 내려가 미로 같은 길을 걷다 보면 나타나는 미화 노동자들의 휴게공간.
시멘트 바닥에 각종 식재료 널브러져 있고, 분리수거함에서 주워 온 냉장고 두 개와 밥솥, 가스버너 등이 줄지어 있었다.
화장실은 물론 없었고 7명이 함께 식사하는 테이블 옆에는 오래된 난로 하나가 놓여있었다.
엄씨는 "LH에서 17평 크기의 아파트 공실을 휴게공간으로 제공해 줬지만, 7명이 함께 생활하기에는 너무나 좁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공간을 오랜 기간 공실로 둘 수 없기 때문에 자주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가스조차 나오지 않아 밥을 지어 먹을 수도 없다"고 호소했다.
노동단체는 이와 관련해 지난 18일 LH전북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인간다운 노동조건을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