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서울역에서 가족을 잃고 홀로 지내 온 한 남성이 경찰 등의 도움으로 50년 만에 극적인 재회를 이뤘다.
"반가워, 동생아"
11일 오후 2시 부산 중부경찰서. 한 남성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강경화(54·여)씨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겼다. 두 사람은 눈물을 글썽이며 한참이나 포옹했고, 이를 지켜보던 경찰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이 남성의 정체는 경화씨의 남동생 강모(53)씨로, 이날은 두 사람이 50년 만에 다시 만난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동생 강씨는 3살이던 1975년, 아버지와 함께 전남 목포에서 서울역으로 올라갔다. 당시 서울에서 장사를 하던 어머니를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수많은 인파로 붐비던 서울역에서 강씨는 순간 길을 잃고 그만 아버지와 헤어지고 말았다.
강씨 부모님은 아들을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산가족을 찾아 주는 방송에 직접 출연해 사연을 전하기도 했고, 미아 찾기 사이트에 사연도 등록했지만 아들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 누나 경화씨도 혹시나 동생과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성인이 된 뒤 보육원 봉사 활동을 열심히 다녔지만 성과가 없었다.
세월이 흘러 강씨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이에 지난 2019년 어머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유전자 등록을 했다. 건강이 위독한 상태에서 이뤄진 유전자 등록은 1~2달이나 걸렸지만 어머니는 오로지 아들을 찾겠다는 심정으로 버텨냈다.
그리운 아들을 만날 날을 수십 년이나 오매불망 기다린 엄마의 애끓는 심정이 아들에게 닿은 걸까. 아들 강씨는 지난 2월 1일 부산 중부경찰서를 찾았다. 그동안 홀로 부산의 한 보호 시설에서 지내 온 강씨는 너무 어릴 때 가족과 헤어져 자신의 본명도, 생일도 모르는 상태였다. 아버지 얼굴만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을 뿐 가족에 대한 기억도 거의 없었다.
이런 강씨에게 경찰은 유전자 검사를 제안했다. 아동권리보장원의 도움을 받아 검사를 진행했는데, 한 여성 유전자와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2019년 강씨 어머니가 등록해 둔 바로 그 유전자 정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2023년 1월 86세의 나이로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경찰은 유전자 정보를 단서로 가족관계 조사에 나섰고, 결국 서울에 사는 누나 경화씨를 찾았다. 경화씨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동생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날 한달음에 부산을 찾았다.
누나 강경화씨는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땐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동생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생각 난 건 엄마였다"며 "이렇게 기쁘고 감격스러운데 엄마가 소식을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제 자주 왕래하며 그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걸 남들보다 많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동생 강씨도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았던 엄마 얼굴이 누나에게 있는 것 같다. 특히 명절이 되면 가족을 꼭 다시 만나고 싶었는데 주변의 많은 도움으로 가족을 찾게 돼 참 감사하다"면서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여러 친척들도 최대한 많이 만나고 싶고 주변에 가족을 잃어버린 이들도 경찰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적극 홍보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남매는 이날 부산 중부경찰서가 마련한 상봉식에서 한참이나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다. 경찰관들은 꽃과 케이크를 건네며 진심 어린 축하를 전했다. 심태환 부산 중부경찰서장은 "진심으로 가족 상봉을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유전자 분석을 적극 활용해 장기 실종자 찾기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