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의 효력을 정지하며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총리가 재판관을 지명해 임명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헌법소원 및 가처분 신청인이 '헌법과 법률적 자격을 갖춘 재판관'으로부터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받게 될 수 있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헌재는 16일 법무법인 도담 김정환 변호사가 낸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재판관 전원일치로 인용했다.
이에 따라 한 대행이 지난 8일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행위의 효력은 일시 정지된다. 정지 기한은 김 변호사가 낸 '재판관 임명권 행사 위헌확인' 헌법소원의 선고 시까지다.
헌재는 한 대행이 지명에 잇따르는 인사청문요청안 제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송부 요청 및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 등 일체의 임명 절차를 진행하지 못하도록 했다.
헌재는 가처분과 헌법소원 본안 결정의 결론에 따라 발생할 불이익을 비교하고, 본안 헌법소원이 기각되더라도 가처분을 받아들여 지명 행위의 효력을 정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헌재는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총리가 재판관을 지명해 임명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 "만약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총리에게 재판관을 지명해 임명할 권한이 없다고 한다면, 피신청인(한 권한대행)이 재판관을 지명해 임명하는 행위로 인해 신청인(김정환 변호사)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자격과 절차'에 의해 임명된 '재판관'이 아닌 사람에 의해 헌법재판을 받게 돼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받게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헌재는 "가처분을 기각할 경우 이 사건 후보자에 대한 임명 절차가 그대로 진행돼 피신청인이 이 사건 후보자를 재판관으로 임명하게 될 것"이라며 "(한 대행에게) 임명할 권한이 없다면 피신청인의 임명행위로 인해 신청인만이 아니라 계속 중인 헌법재판 사건의 모든 당사자의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 대행 측은 의견서를 통해 '후보자 발표만 했을 뿐 지명·임명한 것은 아니므로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헌재는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헌재는 또 "가처분이 기각됐다가 헌법소원 심판 청구가 인용될 경우 이 사건 후보자(이완규·함상훈)가 재판관으로서 관여한 헌재 결정 등의 효력에 의문이 제기되는 등 헌재의 심판 기능 등에 극심한 혼란이 발생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본안심리 결과 한 대행에게 임명권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난다면 두 후보자가 관여한 재판에 대한 재심이 크게 늘어나는 등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울러 헌재 재심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더라도 '부적격 재판관'에 의한 결정이 효력을 갖는 셈이 되기 때문에 "헌법재판에 대한 신뢰가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헌재는 "가처분을 인용한 뒤 종국결정에서 청구가 기각됐을 때 발생할 불이익보다 가처분을 기각한 뒤 청구가 인용됐을 때 발생하게 될 불이익이 더 크다"고 결론 내렸다.
앞서 한 대행이 지난 8일 이완규·함상훈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자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지명권을 권한대행이 행사하는 것이 '위헌'이자 '월권'이라고 주장하는 다수의 헌법소원·가처분이 제기됐다.
헌재는 김 변호사가 제기한 사건을 지난 9일 접수하고 무작위 전자 추첨으로 마은혁 재판관을 주심으로 선정한 뒤 11일 정식 심판에 회부했다. 이후 전날과 이날 이틀 내내 평의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