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을 깨고 대선 출마의 꿈을 접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몸값이 상한가를 치고 있다. 16일 하루 오 시장의 서울시청 6층 집무실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들이 오가느라 문턱이 닳을 정도였다.
▶7시 30분 김문수 후보 조찬
▶11시 20분 나경원 후보 면담
▶12시 00분 안철수 후보 오찬
▶2시 30분 유정복 후보 면담
전날 저녁엔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퇴근하던 오 시장을 관사 부근으로 불러내 1대1 대선 코치를 받았다.
만 하룻동안 오 시장을 '알현'한 국민의힘 예비후보 5명은 예외없이 오 시장에게 선물까지 덤으로 받았다. 바로 USB다. 그 USB 안에는 오 시장의 집권시 플랜이 들어있다고 한다. 대선 공약집인 셈이다. 핵심은 '약자와의 동행'(약동)이다.
당초 13일 대선 출정식을 가지려했던 오 시장은 지난주 내내 약동 관련된 일정으로 채우며 대선 출마 준비를 마쳤었다.
마지막 행사는 11일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장애인의 날 기념 '동행서울 누리축제'였다. 그는 이 행사에 참석해 약동을 '서울시정 목표'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약자와의 동행은 성장 위주가 아니라 질적으로 성숙한 사회, 나아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제 철학과 의지입니다."
한국 사회에 대한 오 시장의 인식과 비전이 바로 약동에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약동은 '서울런'이다.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취약계층 학생들에게 온라인 강의와 1:1 멘토링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정책이다. 대치동 학생들이 받는 정상급 강사들의 강의를 달동네 학생들도 똑같이 들을 수 있게 하자며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서울런을 통해 대학에 합격한 취약계층 학생 수는 2023년 462명, 2024년 682명, 2025년 782명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충북, 평창, 김포 학생들도 들을 수 있게 했다.
디딤돌 소득 정책도 오 시장의 애착 약동 정책이다. 소득이 부족한 가구에 부족분의 일정 비율을 채워주는 소득보장제도다. 기존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돈을 벌어 소득이 일정선을 넘으면 지원이 줄어들기 때문에 근로 의욕을 저하시키는 맹점을 지닌다. 이에비해 디딤돌 소득은 일을 해도 부족한 만큼은 채워주기 때문에 소득 증가와 근로 의욕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모델이다. 특히 다른 복지제도는 당사자가 직접 신청해야해 부담감이나 낙인효과를 주지만 디딤돌 소득은 서울시가 선제적으로 발굴하는 찾아가는 복지이기도 하다. 취약계층의 수급 탈피율 제고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이와함께 쪽방촌 주민들이 지정된 식당에서 하루 한 끼 원하는 메뉴를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동행식당도 기존 식사 지원 정책과 다른 약동 정책이다. 쪽방촌 주민들의 식사 선택권을 보장하고, 지역 식당과의 협력을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쪽방촌 주민과 노숙인이 후원 생필품을 선택해 가져갈 수 있도록 만든 온기창고 역시 성과를 내고 있는 약동 정책이다. 온기창고는 먹거리와 생필품을 제공하는데, 전 직원이 쪽방촌 주민으로 구성되어 일자리 창출 효과도 나타냈다.
이 밖에 한파에 취약한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들에게 따뜻한 목욕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행목욕탕, 노숙인과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에게 인문학 강의를 제공하여 자존감 회복과 자립 의지를 키우는 희망의 인문학도 오세훈표 약동 정책이다.
오 시장이 당초 약동을 대선 케치프레이즈로 내건 이유는 약동이 일견 미시적인 정책으로 보이지만 성장이라는 거시적인 개념을 포괄하고 있고, 궁극적으로는 성장과 약동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이 성장 자체를 목표로 매진해오면서 사회적 약자를 양산해왔지만 이제는 성장의 목표가 약자와의 동행이어야 하고, 국민 모두가 성장의 열매를 고루 누리는 포용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따라서 오 시장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들에게 건낸 USB에는 대한민국의 성장통을 치유하고 대한민국 사회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일 오 시장의 비책이 담겨있는 것이다.
오 시장은 자신의 약동 정책들을 전국으로 확산하는 것이 대선 1호 공약이라고도 말한 바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오 시장은 자신을 찾은 후보들에게 자신과의 만남 보다는 USB 속 자신의 철학에 집중하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