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3일 제21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유력 대선주자들이 '딥페이크와의 전쟁'을 선포한 가운데, 나경원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최근 내한한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발언을 임의로 편집한 자신의 홍보 영상을 제작·게시해 논란이 일었다.
나 후보는 지난 20일 자신의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콜드플레이가 자신을 차기 대통령으로 추천했다는 내용의 쇼츠(짧은 영상)를 올렸다. 지난 18일 경기도 고양시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공연에서 콜드플레이 보컬 크리스 마틴이 한국의 대통령 파면 상황을 언급한 장면을 편집한 것이다.
실제 마틴의 발언은 "왜 우리가 한국에 올 때마다 대통령이 없는 것인가. 드러머 월 챔피언을 다음 대통령으로 추천한다"였다. 지난 2017년 내한 당시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등으로 헌법재판소로부터 파면 선고를 받아 콜드플레이를 둘러싼 '탄핵 평행이론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 후보 측은 나 후보와 전혀 상관 없는 마틴의 발언을 자의적으로 편집했다. '드러머 윌 챔피언'이라는 대목을 '드럼통 챌린지를 한 나경원'으로, 윌 챔피언의 얼굴에는 나 후보의 얼굴을 합성했다. 여기에 "나경원 4강 간다, 2강 간다, 최종 후보다, 대통령이다"라는 자막을 달았고, 나 후보가 "땡큐, 콜드플레이. 다음 내한공연 때는 제가 꼭 있겠다"라고 화답하는 영상을 게시했다.
누리꾼 반응은 '싸늘'…댓글 삭제 의혹까지?
나 후보 측의 이 같은 패러디 영상이 공개된 뒤 누리꾼들의 비난이 쇄도했다. 해당 영상의 댓글에는 "콜드플레이 발언을 왜곡한 거 아닌가", "저작권 침해 아닌가", "부끄러운 줄 알면 영상을 지우세요", "콜드플레이가 고소해도 할 말 없다" 등 부정적인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공정무역, 성소수자 권리 등 콜드플레이가 추구하는 진보적 가치와도 어긋난다는 지적도 쏟아졌다. 특히 영상에 언급된 '드럼통 챌린지'에 담긴 나 후보 측의 의도와 맞지 않다는 비판이 나왔다.
나 후보는 지난 15일 자신의 SNS에 드럼통에 들어간 사진과 함께 "드럼통에 들어갈지언정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한 누리꾼은 "단순 홍보 영상이라기에는 콜드플레이가 추구해 온 방향성에 어긋나는 영상"이라고 꼬집었다. 콜드플레이 팬 카페에서는 "어떤 정당과 어떤 후보를 지지하던 간에 콜드플레이를 이렇게 정치적으로 무단 이용하는 건 정말 옳지 않다고 본다"라는 반응도 나왔다.
나 후보 측은 영상을 비공개로 전환한 뒤 '콜드플레이의 의도와는 무관한 단순 홍보영상입니다'라는 고정 댓글을 달고 다시 공개했다. 하지만 이후 댓글 삭제 의혹까지 제기됐고, 22일 현재 영상은 삭제 혹은 비공개 처리된 상태다.
딥페이크 처벌? 선관위의 해석은?
최근 조기 대선 국면에 들어서면서 각종 SNS에는 유력 대선 주자들의 딥페이크 영상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9일부터 특별대응팀을 꾸려 대선 기간 온라인상에서 각종 허위사실이 유포되는 데 대해 대응 중이다.
국민의힘도 딥페이크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최근 숏폼 동영상 플랫폼 틱톡 한 계정에 올라온 '차기 대통령 선거 여권 후보 최강 라인업'이란 제목의 딥페이크 영상에는 스스로 가발을 벗는 한동훈 전 대표를 비롯해 김문수, 홍준표, 안철수 등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를 희화화한 모습이 담겼다.
나 후보의 경우는 이와 정반대다. 오히려 영상을 자의적으로 편집해 홍보 용도로 유포했다.
공직선거법 제82조의8(딥페이크영상등을 이용한 선거운동)에 따르면 "누구든지 선거일 전 9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딥페이크 영상을 제작·편집·유포·상영 또는 게시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이를 위반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상 5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현행 공직선거법에서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만든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가상의 △음향·이미지·영상 등을 딥페이크 영상으로 규정한다.
이와 관련 선관위는 나 후보의 영상이 딥페이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22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해당 영상이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고, 유권자가 사실로 오인하기 어려운 수준이 아닌 일종의 패러디라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또 뒤늦게 달린 '콜드플레이의 의도와는 무관한 단순 홍보영상입니다'라는 고정 댓글을 언급하며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실로 오인하지 않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효과가 있다"라고 덧붙엿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