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 일주일. 찬반 시위가 맞붙던 서울 도심의 거리엔 꽃이 피고, 웃음이 번지고 있다. 분열과 긴장이 뒤덮던 공간은 어느덧 시민들의 평온한 일상으로 다시 채워지고 있다.
지난 4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이후, 광화문과 안국동, 여의도 등 정치적 긴장이 집중됐던 지역은 빠르게 봄기운을 회복했다. 시위 현장에 남아 있던 경찰차와 차벽 너머로는, 꽃을 들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8일 오후,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부터 북촌 한옥마을까지. 여전히 설치된 일부 차벽이 시위의 흔적을 남기고 있었지만 거리엔 따스한 볕이 들고, 사람들의 표정엔 여유가 돌아왔다.
전남 해남에서 수학여행을 온 김유성 군(16)은 "한옥마을을 보러 왔는데, 선생님이 이 근처에 사람이 많다고 조심하라고 하셨다"며 "지금은 평화롭다. 예쁜 사진도 많이 찍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가족과 여행 중이라는 토리 씨(33)는 "시위로 긴장된다는 말을 들었지만, 실제로는 매우 안전하고 좋은 경험이었다"며 웃었다.
"장사도 숨도 다시 트였다"… 반가운 일상 회복
거리 상인들도 표정이 밝아졌다. 안국역 인근 카페에서 일하는 권 모 씨는 "시위가 계속되는 동안 매출이 안 나왔고, 선고 전날과 당일에는 아예 문을 닫아야 했다"며 "탄핵 선고 이후 영업 이틀 차인데도 벌써 회복세가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 모 씨(23)도 "확성기 소리 때문에 등교길이 스트레스였는데 요즘은 조용해서 너무 좋다"며 "이제야 진짜 봄 같다"고 말했다.
광화문 사거리엔 꽃 심기 작업이 한창이다. 중부공원여가센터 박영길 씨(61)는 "탄핵 심판 때문에 평소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시민들이 꽃을 보며 위안과 희망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의도, 벚꽃 따라 웃음도 돌아오다
탄핵 반대 집회의 중심이던 여의도도 어느새 봄의 얼굴로 바뀌었다. 여의서로(윤중로)의 봄꽃 축제는 지난 4일부터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탄핵 선고로 나흘 늦춰졌다. 그런데 벚꽃 개화 시기에 맞춰져 8일부터 상춘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탄핵 관련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었다는 김지연 씨는 "이곳이 그렇게 시끄러웠던 곳 맞나 싶다"며 "아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고 달라진 분위기에 신기함마저 나타냈다.
국회를 둘러싼 윤중로 제방을 따라 만들어진 잔디밭 한켠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있던 중년 부부는 "오랜만에 여유를 느낀다"며 "시위와 소란 대신, 커피 한 잔 마시며 걷는 이 시간이 참 반갑다"고 말했다.
다만, 국회 앞에는 아직 바리케이드가 남아 있고 일부 1인 시위자들과 행인 간 실랑이도 있었다. 그러나 확성기 대신 벚꽃과 웃음소리가 들리는 거리 풍경은 '정치의 거리'에서 '시민의 거리'로의 전환을 실감케 했다.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갈등의 상징이었던 공간들이 이제는 꽃과 사람, 웃음과 산책으로 채워지고 있다. 혼란의 시간을 지나 다시 찾아온 봄.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종로와 광화문 일대, 정치 일번지 여의도도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시민들의 일상도 봄과 함께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