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관저를 떠나기 전까지 한국사 강사 전한길,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 등 '친윤'을 관저로 불러들이는 것뿐 아니라 대선 관련 언급을 이어가며 '관저 정치'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친윤계'로 알려진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각종 음모론을 주장하며 윤 전 대통령을 지지해 온 한국사 강사 전한길시와 관저를 방문했다. 세 사람은 나란히 손을 잡은 채 웃는 것은 물론 주먹을 들어 올리며 파이팅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전씨는 자신이 설립한 '전한길 뉴스'에 함께 찍은 사진을 게재하며 "윤석열 대통령님께서 이사를 앞두시고, 감사와 위로의 뜻을 전하고자 저를 불러주신 자리였다"며 "한치 흔들림 없는 단단한 표정으로 자신을 맞았다"고 전했다.
전씨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나야 감옥 가고 죽어도 상관없지만, 우리 국민들 어떡하나, 청년 세대들 어떡하나"며 "지난겨울 석 달 넘게, 연인원 수천만 명의 2030 청년과 국민께서 광화문과 여의도,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탄핵 반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며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섰다. 그분들께 너무 미안해서 잠이 오질 않는다"고 말했다.
대선 출마 선언한 나경원·이철우·김문수, 尹 만나거나 전화 통화
이들뿐 아니라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대선주자들도 연달아 윤 전 대통령과 관저에서 만나거나 전화 통화하고 있다.
지난 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5일 관저를 찾아 윤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윤 전 대통령은 나 의원에게 "어려운 시기에 역할을 많이 해줘서 고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나 의원은 파면 뒤 처음 윤 전 대통령과 1시간가량 독대한 사실이 알려지며 이른바 '윤심'(尹心)이 실렸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이철우 경북지사는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관저에서 윤 전 대통령을 만났다고 밝히며 "(윤 전 대통령이) 이번 선거에서 우리 당이 승리해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며 최선을 다하시겠다고 했다", "사람을 쓸 때 가장 중요시 볼 것은 충성심이라는 것을 명심할 것을 당부했다"는 말을 전했다.
이 경북지사는 "헌법재판소 판결도 막판에 뒤집힌 것으로 생각하시고 매우 상심하는 모습이었다"며 "건강상의 이유로 평소와 달리 약주도 한 잔 안 하셔서 걱정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각하 부르기 운동'을 제안했던 이 지사는 지난 9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국민의힘 유력 대선 주자로 꼽히는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9일 TV조선 '뉴스9'에 출연해 윤 전 대통령과 통화한 내용을 밝혔다.
김 전 장관은 "장관직을 그만두면서 저를 임명해 주신 (윤 전) 대통령께 전화드려 '제가 이렇게 사퇴하게 됐다'고 말씀드렸다"면서 "출마 이런 건 전혀 말씀 없으셨다. 하여튼 '잘 해보라'고,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하시고 저도 '대통령께서 너무 고생 많으셨다' 그런 정도의 말씀을 나눴다"고 말했다.
이러한 가운데 윤 전 대통령의 멘토로 불린 신평 변호사는 지난 7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윤 전 대통령이 예언자적 지위에서 점지하는 사람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尹 '관저 정치', '사저 정치'로 이어질까
이처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이후 일주일 동안 관저에 머물며 정치인 등을 잇달아 만난 윤 전 대통령을 향해 사실상 '관저 정치'를 이어갔다는 비판은 물론, '사저 정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또한 일각에서는 윤 전 대통령이 일부 대선 주자들을 만난 것은 지지층을 동원해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은 물론 나아가 대선까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안귀령 대변인은 10일 브리핑에서 "국민의힘은 내란수괴 윤석열과 결코 헤어질 수 없는 내란당"이라며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이철우 경북도지사 등 국민의힘 주자들이 '윤석열 팔이'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내란수괴 후계자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행태에 참담하다"며 "국민의힘 대선 경선은 내란 세력의 대표를 뽑는 선거인가. 국민은 내란 세력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이번 선거가 윤 전 대통령의 잘못된 계엄 선포로 인해서 이뤄지는 것 아니냐"며 "윤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아주 소수의 결속된 지지층을 가지고는 정권을 잡을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계엄 선포로 인해서 파면까지 당한 사람들이 대통령 선거에 무슨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겠나. 대통령이 민다고 국민이 따라가지 않는다"며 "윤 전 대통령이 대선에 개입을 하면 국민의힘은 더 망할 것"이라고 했다.
일각의 우려와 관련해 'KBS 1라디오 전격시사'에 출연한 나경원 의원은 '윤 전 대통령이 국민의힘 경선 후보들과 만나 메시지를 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대통령의 메시지를 우리가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 의원은 "대통령께서 꼭 메시지를 준다는 것보다는, 저를 관저에 오라고 한 이후 다들 대통령 만나 뵈러 가고 사진도 나오고 있다"며 "대통령의 공을 발전시키는 건 몰라도 선거에 자꾸 끌어들이는 것은 결코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밝혔다.
한편 윤석열 전 대통령은 헌재의 파면 선고 이후 일주일만인 오늘(11일) 오후 5시, 2년 5개월간 머물렀던 서울 한남동 관저를 나와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사저로 향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