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은 지난달 경북·경남·울산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인한 산림 피해 면적이 10만 4천㏊라고 밝혔다. 산불 진화 직후 집계된 4만 8천㏊의 두 배를 넘는 것으로 여의도 면적의 124배, 서울 면적의 1.72배에 달한다.
광범위한 피해 규모만큼이나, 산불 이후의 재생·복원 대책과 생태계 회복, 재발 방지를 위한 '포스트 산불'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산불 대응과 환경 피해 예방 세미나를 열고 다양한 해법을 논의했다.
'담배꽁초 금지'로는 한계 …인공강우 등 대안 필요임주훈 전 산림복원협회 회장은 "담배꽁초나 성묘 시 화기 사용 금지 같은 기존 예방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산불 취약 지역 가옥 옥상에 대형 수조와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고, 전통 목조 건물 주변에는 내화수림대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강풍에 의한 확산을 막기 위해 동서 산악도로 개설과 방풍책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공강우를 활용한 산불 예방 방안도 논의됐다. 인공강우는 산림 습도를 높여 화재 발생 가능성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 미국·중국·러시아 등 50여 개국에서는 이미 적용 중이다. 장기호 기상청 국립기상과학원 연구관은 "강원 지역에서 적설이 산불 예방에 긍정적 영향을 줬다"며 "인공강우의 실증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산불이 남긴 2차 재앙…수질 악화·산사태 경고산불 피해 직후 발생할 수 있는 2차 환경 피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형태 국립산림과학원 과장은 "산불로 식생이 불타면 토양이 노출되고, 발수성이 생겨 물 흡수가 어려워진다"며, 이로 인해 수자원 악화 및 산사태 위험이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최근 3년 간 안동·울진·대전 지역의 산불 피해지를 정밀 모니터링한 결과, 산불 직후 적은 비에도 고농도의 난분해성 유기물이 하천에 유입됐으며, 장마철에는 오염물질 부하량이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지난 20년간 발생한 산사태 1만여 건 중 960건이 산불 피해지에서 발생했으며, 산불 후 5년간 산사태 발생률이 평균 32%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최 과장은 "특히 산불 직후 1년이 회복의 골든타임"이라며, 초기엔 인위적 개입이, 이후엔 지속적 숲 관리로 재해 저항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림청 책임 물어야"…자연 복원이 더 바람직김범철 강원대 환경학과 명예교수는 "기후·발화원·연료원 중 사람이 통제 가능한 건 연료원(산림)인데, 산림청의 관리 소홀로 대형 산불이 났다"고 지적하며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는 "사방댐 대부분이 토사에 메워져 방치돼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토사를 제거하지 않고 새 사방댐만 짓는 건 예산 낭비"라고 말했다.
또한 산불로 하천 생태계까지 파괴된다는 문제도 지적됐다. 토사와 유기물이 하천 바닥을 뒤덮어 어류 산란장 등 서식지가 파괴되고 생물 다양성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조기 복구와 식생 회복, 사방 사업을 통해 토사 유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규송 국립강릉원주대 교수는 복원 방식으로 '자연 복원'이 '인공 복원'보다 안정성이 크고 생물 다양성도 높다며, 지역 여건에 따라 두 방식을 적절히 병행하는 맞춤형 복원 전략을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산불 복구와 예방을 위해 추경 예산 753억 원을 편성했으며, 재해대책비도 1,120억 원 증액했다. 김학진 산림청 산림생태복원과장은 "산림 구조 자체를 바꾸겠다는 각오로 내부 논의를 거듭하고 있다"며 "대책 수립 시 철저히 검토해 반영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