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①중국에 다 먹히는데 마른걸레 짠다…돌파구는?
②트럼프 관세가 K배터리에 기회될수도…"틈새로 美 시장 공략"
(계속)
국내 배터리 산업이 중국에 밀리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발 관세 전쟁으로 시장 불확실성까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위기가 기회라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은 생존을 위해서는 관세 전쟁을 시장 확대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국의 대중국 관세로 중국 업체의 가격 경쟁력이 약해진 틈을 타 미국 등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트럼프 관세에 韓 배터리 '휘청'…시장 불확실성 커져
트럼프 발 관세 폭풍이 몰아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의 혼란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에서 중국에 밀려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 이어 엎친 데 덮친 상황이다. (관련기사 : 중국에 다 먹히는데 마른걸레 짠다…돌파구는?)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일 발표한 '제조기업의 미국 관세 영향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배터리 업종이 84.6%로 관세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가장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제조업체 2107개사 중 60.3%가 관세 영향권에 있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미중 간 관세 전쟁이 심화하는 점도 불안 요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4일부터 중희토류와 희토류 자석 등 총 7종의 수출을 통제했다. 중국은 전 세계 중희토류 공급량의 99%, 희토류 자석 90%를 생산한다. 문제는 국내 배터리 업계가 핵심 부품에 쓰이는 희토류 중 절반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업체는 일정 수준의 코발트 등 재고를 비축해 당장의 큰 영향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미중 간 관세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자동차 관세 부과가 배터리 수요 감소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배터리 총수요의 70~80%가 전기차 부문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3일(현지시간)부터 수입 자동차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다음달 3일부터는 150개 자동차 부품에 대해서도 추가 관세를 예고했다. IBK경제연구소는 미국의 25% 자동차 관세로 인해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이 올해 18.6% 감소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의 IRA 폐지 가능성도 큰 리스크다. 트럼프는 취임 초부터 IRA 정책을 폐지·축소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미국 IRA가 실제로 폐지될 경우 국내 배터리 업계 피해는 막심할 것으로 관측된다. 산업연구원은 지난 1월 '글로벌 산업통상 정책 변화에 따른 한국 배터리 산업 영향과 대응 전략' 보고서에서, 미국의 친환경차 구매세액공제가 한국 기업의 미국 내 배터리 판매량을 26%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전문가 "미중 관세전쟁 기회 엿봐야"…美 시장 점유 기회될수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지만, 오히려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시각도 나온다. 고조되는 미중 관세 전쟁을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미중 간의 관세 전쟁으로, 미국 내에서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145% 관세를 부과하면서 향후 미국 시장에서 중국 배터리 점유율이 떨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에 따르면, 올해 1~2월 미국의 중국산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수입액은 2억8900만달러(약 40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미국의 전체 배터리 수입은 약 23% 증가했는데, 이 중 중국산 배터리 수입 비중은 극적으로 감소한 것이다. 지난달 10일(현지시간)에는 미국 하원이 국토안보부의 중국 배터리 기업으로부터 배터리 조달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해당 법이 상원을 통과하면 2027년 10월부터 중국 닝더스다이(CATL), 비야디(BYD) 등 6개 중국 기업의 배터리를 구매할 수 없게 된다.
산업연구원 김경유 선임연구위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우리가 배터리를 최대한 미국에서 생산한다고 하더라도 주요 원료는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국이 중국산 원료에 고율의 관세를 매긴다면 우리 업체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 배터리 업체들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고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을 공략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차전지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 오익환 부사장은 10일 '차세대 배터리 콘퍼런스'에서 "북미 ESS 수요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데 중국 업체가 빠지면 ESS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업체는 한국뿐"이라며 "미국 관세 정책으로 중국산 배터리는 계속 가격이 오르고 한국 업체가 미국에서 배터리를 생산하면 IRA 지원을 받아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북미 ESS 배터리 수요는 78GWh다. 이중 약 87%(68GWh)가 중국산 배터리다. 현재 중국 CATL, BYD 등이 저가형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로 시장을 장악했는데, 이 구조에 지각 변동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SNE리서치 박세혁 프로는 통화에서 "우리나라 주요 배터리 업체는 미국뿐만 아니라 EU 내 생산을 꽤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가격 경쟁력 자체만 놓고 보면 밀릴 수 있지만 우리 기업의 기술 경쟁력이 앞서기 때문에 관세 전쟁 국면이 우리에게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장기적으로 정부가 배터리 원료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중국이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에서 영향력이 가장 크지만 세부 부문별로는 중국의 장악력 정도에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다. 산업연구원은 '배터리 산업의 공급망 경쟁우위 확보 전략' 보고서에서 △배터리 셀 △삼원계 양극활물질 △천연흑연 △수산화리튬을 배터리 4대 핵심 품목으로 제시했다. 보고서는 "4대 핵심 품목은 최근 배터리 산업 당면 현안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어 배터리 산업의 경쟁우위 확보를 위해서는 이들 품목에 대한 정책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