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한덕수 대망론'이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과거 일으켰던 '마늘 파문'이 재조명되고 있다.
최근 SNS 등 온라인에서는 2000년 당시 한 대행에 대한 글이 공유되는 중이다. 한 누리꾼은 "중국과 마늘 분쟁. 협상 책임자로서 이면 합의를 숨겼다가 경질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누리꾼도 "25년 전 중국과 마늘 수입 자유화의 길을 열었던 게 한덕수였다"고 전했다. 이어 "정부와 국민을 모르게 굴욕 계약을 하고 왔다. 2년 뒤 이 사실이 밝혀져 경질됐다"고 덧붙였다.
한 대행은 25년 전인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재직했다. 당시 한국 마늘 농가는 대량으로 수입되던 중국산 마늘 탓에 시름을 앓고 있었다.
1999년 중국으로부터 수입되던 마늘 양은 3만 7152kg에 달했다. 1996년(9497kg)보다 4배 정도 증가한 수준이었다. 국산 마늘은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중국산 마늘이 700원 수준이었는데, 국산 마늘은 2600원으로 30% 정도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0년 6월 대책 마련에 나섰다. 중국산 냉동 초산 마늘의 관세율을 기존 30%에서 315%까지 올리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했다. 그러자 중국은 보복 조치를 내렸다.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 수입을 중단했다.
경제 손해는 한국이 훨씬 컸다. 당시 마늘 수입 규모는 900만 달러였는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 수출 규모는 5억 달러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 탓에 한덕수 당시 본부장은 우다웨이 주한 중국대사를 불러 따지기도 했다.
양국은 합의에 돌입했고, 그해 7월 31일 한국은 사실상 백기 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2002년까지 3년간 매년 의무적으로 3만 2천~3만 5천kg 중국산 마늘을 30~50%의 낮은 관세율로 수입하기로 했다. 중국은 한국산 휴대폰 통관을 허용해 수입 중단을 해제했다.
파문은 2년이 지난 2002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한덕수 당시 본부장의 '세이프가드 연장 불가 합의 사실 은폐 의혹'이 불었다. 농민들이 세이프가드 조치 연장을 요청했는데, 무역위원회가 '2002년 말로 중국산 마늘 세이프가드가 종료된다'는 양국 합의 내용을 들며 요청을 거부했다.
이 내용을 몰랐던 농민들은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채 당장 2003년부터 다시 중국산 마늘의 공세를 받을 위기에 놓였다. 50만 마늘 농가에 대한 대책도 없었기 때문에 농민들은 반발했다. 시위를 통해 "이번 비밀 협상은 정부가 벌인 희대의 사기극"이라며 "비밀 협상을 즉각 철회하고 재협상에 임하라"고 주장했다.
해당 내용은 합의문 '부속 문서'에 담겨 있었다. 세이프가드 연장을 2년 반으로 제한한다는 조항이 숨어있던 것이다. 당시 협상을 이끌었던 한덕수 본부장은 이 내용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센 비판을 받아야 했다.
심지어 김대중 전 대통령도 해당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은 협상 담당자였던 한덕수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과 서규룡 농림부 차관을 문책 경질했다.
한덕수 경제수석은 경질 당시 "2000년 중국과 마늘 협상을 총지휘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라며 "정부가 국민에게 더욱 확실하게 알릴 것을 알려주지 않는 데 대해 분명한 비판과 질책이 있다. 그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은폐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시에는 3년 동안 세이프가드 조치가 유지된다는 것에 설명의 초점이 맞춰졌다. 그래서 보도자료나 설명에 강조가 안 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와 같은 소식에 한 대행 체제로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벌일 '한·미 2+2 통상 협의'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쏟아지고 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4일 저녁 9시(현지 시간 오전 8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와 한미 2+2 통상 협의를 벌인다.
한 대행의 협상 권한을 두고 잡음도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위성락 의원은 지난 2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한시적인 권한대행이 이래도 되는 건지 의아하다"며 "막중한 대미교섭을 놓고 자신의 정치적인 행보와 연결시키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다"라고 말했다.
같은 당 차지호 의원도 "국민은 총리 임명직에게 그런 권한을 준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떻게 (권한대행이) 선출직 대통령과 같이 국민 지지를 받은 것과 동일한 권한을 행사한다고 하나"라고 물었다.
조국혁신당 차규근 혁신당 정책위의장은 21일 "한 대행이 또다시 국가의 명운을 건 무역 협상에 권한을 행사하려고 한다"며 "또다시 25년 전 마늘 협상 파문이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덕수는 이미 실패한 협상가다. 그에게 더 큰 일을 맡겨서는 안 된다"며 "매우 우려스럽고 걱정된다. 책임질 수 없는 일은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그럼 손 놓고 있으라는 말씀인가"라며 "헌법 체제 하에서 이뤄지고 있다"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김태호 의원은 조 장관을 향해 "국익에 손실이 없을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여주시기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