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사건 재판 증인으로 나온 군인들을 향해 윤 전 대통령 측은 증언 '흠집내기'에 힘썼지만, 이들은 '의원 끌어내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일관되게 말했다. 적극적인 임무 수행을 하지 않았기에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다'고도 했다.
재판 내내 고개를 숙이고 졸거나 침묵을 이어가던 윤 전 대통령은 오후 5시가 넘어서 약 8분간 직접 발언에 나섰다. 그는 "'칼'을 썼다고 해 무조건 '살인'이 아니듯 민주 헌정질서를 무너뜨리고 헌법기관을 동시에 무력화하고 장악해야 '내란' 관점에서 재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끌어내라' 지시 가능하냐…"불가능하면 왜?"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전날(21일)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두 번째 공판을 진행했다. 앞선 기일에 이어 조성현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대령)과 김형기 특수전사령부 1특전대대장(중령)이 윤 전 대통령 측 반대신문을 위해 출석했다.
조 단장은 계엄 당일 밤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으로부터 국회 본청 내부에 진입해 국회의원을 외부로 끌어내라는 지시를 명시적으로 받았다고 재차 증언했다. 지시를 받은 조 단장은 사령관에게 재고를 요청했고 국회로 넘어오는 후속부대가 서강대교 북단을 넘지 않도록 했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 측 송진호 변호사가 '끌어내라 지시'가 가능하냐고 따져 묻자, 조 단장은 "불가능한 지시를 왜 내리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이 계속해 '정당성을 떠나 군사 작전적으로 가능했느냐'고 질의하자 "그게 군사 작전적으로 할 지시입니까. 그 상황에서 임무를 받고 '이상 없습니다'라고 할 사람이 있겠느냐"라고 맞받았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는 것 아닌가"라고 공격했고, 조 단장은 "특정 기억은 더 또렷해질 수 있단 걸 알았다"고 받아쳤다.
윤 전 대통령 측은 또 "계엄을 막은 군인으로 칭송받고 있다"며 "군 지휘계통 군인은 모두 기소되거나 징계받았는데, 증인은 그렇지 않다"며 압박하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에서 흔들림 없이 증언을 이어 가던 조 단장을 향해 "의인처럼 행동하고 있다"며 비꼬았던 상황과 마찬가지로 '증인 흔들기 전략'으로 풀이된다.
조 장관은 계엄 당일 밤은 '이례적'이었고, '당황스러웠다'고 떠올렸다. 검찰 측이 판단 근거를 묻자, 조 단장은 "군에게 명령은 굉장히 중요하다.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반드시 정당하고 합법적이어야 한다. 명령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국가를 방위하는 육군으로 귀결돼야 한다"며 "그런데 제게 준 명령이 그랬습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시민들이 우리를 막고 의원을 끌어내라는 임무 등을 통해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라는 건 군 생활을 25년간 했기 때문에 구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尹발언 부메랑으로
김형기 대대장 역시 이날 출석해 이상현 특전사 1공수여단으로부터 '국회 담을 넘어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를 '윤 전 대통령의 지시라고 이해했냐'는 취지의 질문에 "여단장이 곽종근 전 특수전 사령관과 전화했고, 정확하게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고 답했다.
김 대대장은 증인 신문 말미에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2003년 이등병으로 입대해 군생활 23년차가 됐다고 말하며 "조직에 충성해왔고, 그 조직은 제게 국가와 국민을 지키라는 임무를 부여했다"고 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2013년 검사 시절 윤 전 대통령의 존재감을 대중에 각인시킨 발언이다. 윤 전 대통령은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수사 당시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췻선의 부당한 수사 지휘를 폭로한 바 있다.
김 대대장은 미리 준비해 온 발언을 읽어 내려가며 "12월 4일 받은 임무를 어떻게 수행하겠나. 저는 조직에 충성하겠다"며 "제 부하들은 아무것도 안 했고 그 덕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상급자 명령에 복종하는 건 국가와 국민을 지키라는 임무를 부여했을 때 국한 된다"며 "차라리 저를 항명죄로 처벌해 달라"고 말했다.
김 대대장은 '질서 유지'를 위해 군경을 투입했다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과 달리, "질서유지는 우리 군의 임무가 아니"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질서 유지하는데 총을 왜 가져갑니까?"라고 반문하기도 해 방청석에서도 허탈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를 의식한 듯 윤 전 대통령은 재판 말미에 "계엄이 선포되면 군인이 질서유지하는게 원칙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병력들이 흥분한 상태였다. 들어가서 (의원들을)'끄집어내라'고 했다면 그대로 이행했을 것"이라며 소극적 임무 수행으로 계엄 당일 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지 않았었다고 증언했다. "만약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병력이 움직였다면 '폭동'과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상부에서 최초로 내려온 명령은 "실탄과 공포탄을 지급하라"는 것이었다면서 "탄약고 담당자가 비상소집 명령을 하달 받지 못했다"며 탄약고를 열 수가 없어 챙기지 못했을 뿐이라고 증언했다.
졸다가 눈 떠 강변 尹 "내란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이 형사 법정에 선 모습이 이날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 57분쯤 구속 피고인 등이 들어오는 피고인 전용 통로를 통해 법정에 들어선 뒤 둘째 줄 가장 안쪽자리 피고인석에 앉았다. 촬영을 위해 플래시가 터지기도 했지만, 윤 전 대통령은 카메라를 쳐다보지 않고 굳게 입을 다문 채 맞은편 검사석을 응시했다.
증인 신문 과정에서 입을 열지 않던 윤 전 대통령은 재판 시작 7시간을 넘겨 비상계엄 선포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재차 폈다. 그는 계엄령을 '칼'에 비유했다. "계엄은 가치중립적이고 하나의 법적 수단에 불과하다"며 "칼과 같다고도 할 수 있다. 칼을 썼다고 무조건 살인이라는 식으로 도식적으로 보면 안 된다"고 강변했다.
비상 계엄 선포 그 자체를 '내란죄'로 연결할 수 없다는 논리다. 윤 전 대통령은 "이 사건에서 보듯 아무도 다치거나 유혈사태가 없었고 처음부터 그걸 감안해 실무장 시키지 않았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편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공판기일 일정을 올해 12월까지 미리 정했다. 윤 전 대통령의 다음 재판은 다음 달 12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