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의 차출론이 가라앉지 않으면서 국민의힘 경선 흥행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중도 확장성을 기대했던 대선 주자들은 불참을 선언했고, 참여하는 주자들도 일제히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면서다.
반탄(탄핵 반대) 후보들 위주로 경선 구도가 짜여지면서 이들이 컷오프에 통과할 경우 불법 계엄이 부각될 수밖에 없고 향후 대선 본선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뒤따른다.
한덕수 "마지막 소임"…신경 곤두선 보수 잠룡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면서 '한덕수 차출론'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 대행은 14일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과 함께 저에게 부여된 마지막 소명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출마 여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자 정치권에선 '마지막 소명'이 무엇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같은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 대행에게 출마를 촉구한 당 일각의 움직임에 대해 "(의원) 몇 명이 주선하고 연판장을 받고 돌아다닌 모양인데 철딱서니 없는 짓 좀 안 했으면 좋겠다"라며 다소 날선 반응을 보였다.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한 권한대행이 막중한 권한대행을 맡고 계시다. 출마를 위해 그만두면 상당한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고, 나경원 의원도 "자꾸 한 총리 이야기가 나오면서 경선의 중요성도 자꾸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비판했다.
중도 보수를 자처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역시 "당의 후보를 만드는 과정에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켜야 하는데, 경선에 김을 빼는 것 자체는 해당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윤 전 대통령 탄핵 찬반 여부를 떠나 주요 주자들 모두 한 대행에 대한 경계심을 감추지 않는 모습이다. 한 대행의 위력이 확인된 만큼 덕담만 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고조됐다는 해석이 당 안팎에서 나온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9~11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506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한 대행은 범보수 후보들 중 이 전 대표와의 양자 대결에서 가장 적은 격차(26.6%p)를 보였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당 지도부에선 한 대행 차출론이 점점 커지는 것에 대해 자제를 당부하는 목소리가 연달아 나왔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특정인을 옹립하는 일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권성동 원내대표도 "출마 의사가 없는 분에게 계속 (출마하라고) 이야기하는 건 당 경선 흥행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지적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유승민 전 의원의 불출마 선언에 이어 주요 주자들 사이에서도 언짢아하는 기류가 점점 커지자 이를 달래려는 듯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韓 고발한 민주당…尹 실정 부각도 '부담'
국민의힘으로서는 더불어민주당의 공세에 먹잇감이 되는 듯한 형국도 부담이다. 민주당은 한 대행을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죄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한 대행이 마은혁 헌법재판관을 뒤늦게 임명한 데 이어 대통령 고유 권한인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한 것은 명백한 월권이라는 것이다.
민주당 한준호 최고위원과 당 법률위원장인 이용우 의원은 "국민과 헌법재판소는 위헌·불법 계엄으로 내란죄를 저지른 윤석열 (전 대통령)을 준엄히 심판했으나 윤석열이 임명한 한덕수 (권한대행)의 위헌적 전횡으로 인해 헌법 유린은 여전히 종식되지 않고 있다"고 고발 이유를 밝혔다.
민주당은 이 전 대표를 필두로 한 대행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하는 등 12.3 내란 사태와 연관 지은 파상공세를 퍼붓고 있다.
'한덕수 카드'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차기 대선을 불법 계엄에 대한 단죄가 아닌 경제 성장 프레임으로 치르고 싶어하는데, 한 대행은 계엄의 늪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한 대행이 국민의힘 대선주자로 주목 받을수록 경제·외교통인 면모를 살릴 수도 있는 반면, 윤석열 정부의 국무총리이자 계엄을 막지 못했다는 실책이 부각되는 측면이 상당하다.
국민의힘 한 초선의원은 "표면적으로는 한덕수 차출론이 당 경선에 관심도를 올려주는 듯한 효과가 있지만, 한 대행이 직접 참여하는 게 아닌 이상 옆길로 새는 것밖에 더 되겠느냐"며 "쌍권 지도부가 기강을 다 잡으려는 것 역시 이 때문일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