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페이지. 최상목 장관에 제가 뭘 전달했다는 부분…67페이지 계엄 포고령에 관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첫 형사재판에서 12·3 비상계엄은 "평화적인 대국민 메시지 계엄"이라 강조하며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오전 재판에서 40여분 간 직접 발언에 나선 윤 전 대통령은 오후 들어서도 발언 기회를 얻어 모두 82분을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은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검찰이 준비해 온 자료를 하나하나 페이지까지 짚어 가며 직접 반박했다. 윤 전 대통령은 26년간의 검찰 경력을 들며 "어떻게 내란죄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시작 단계인 모두 절차부터 검찰과 윤 전 대통령 측의 장시간 진술이 이어졌다.
尹 공소장 두고 "'내란몰이' 겁먹은 사람들의 진술"검찰이 이날 오전 먼저 공소사실 요지 진술에 나섰다. 검찰은 비상계엄의 사전 모의 정황과 선포 경위 등을 짚으며 윤 전 대통령이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키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국회와 선관위 등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고 영장주의, 정당제도 등 헌법과 법률의 기능 소멸을 목적으로 비상계엄을 대한민국 전역에 선포했다"고 강조했다.
파면 열흘 만에 피고인석에 앉게 된 윤 전 대통령은 검찰 측이 발언하는 동안 주로 굳은 표정이었다. 검찰이 주요 인사 체포 지시 등과 관련한 내용을 설명할 때는 입을 굳게 다물거나 표정 변화를 보였다. 옆자리에 앉은 윤갑근 변호사와 이따금 얘기를 주고받던 윤 전 대통령은 국회 침입에 대한 공소사실이 낭독될 때는 헛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검찰 진술이 끝나자, 윤 전 대통령 측은 "공소사실을 전체 부인한다"고 입을 뗐다. 이내 마이크를 넘겨받은 윤 전 대통령은 공소사실이 법리에 맞지 않다고 주장하며 '내란몰이'란 단어를 썼다. 그는 우선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30분경부터 그날 새벽 2, 3시까지의 몇 시간 동안의 상황을 조사된 내용들을 나열식으로 기재한 공소장"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저도 과거에 여러 사건을 하면서 12·12, 5·18 내란 사건의 공소장과 판결문을 분석했는데 이렇게 몇 시간 만에, 또 비폭력적으로 국회의 해제 요구를 즉각 수용해 해제한 몇 시간의 사건을 거의 공소장에 박아 넣은 것 같은, 이런 걸 내란으로 구성한 자체가 참 법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초기 '내란 몰이' 과정에서 겁을 먹은 사람들이 수사 기관의 유도에 따라 진술한 부분들이 검증 없이 많이 반영됐다"고 주장했다.
재차 '평화적 계엄' 논리…노상원은 "아는 바 없다"
윤 전 대통령은 '대국민 호소용 계엄'이라는 논리를 재차 강조했다. 그는 공소사실을 지적하며 "무슨 계엄 사전 모의라고 해서 2024년 봄부터 이런 그림을 쭉 그려왔다는 것 자체가 정말 코미디 같은 일"이라며 "평화적인 대국민 메시지 계엄이지, 장기간이든 단기간이든 군정 실시를 위한 계엄이 아니란 점은 계엄 경과를 보면 너무나 자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과 쿠데타는 다르다"며 "계엄선포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선관위 군 투입에 대해선 "전체적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가동돼있는지 스크린하라 보냈지 부정선거를 수사하라고 보낸 것이 아니"라며 "영장주의를 위반한 압수수색은 아니고, 그런건 지시한 바도 없다"라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을 비선에서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의 관계에 대해선 "저는 아는 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윤 전 대통령은 "계엄이 반나절에서 하루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고 봤다"고 강조했다. 발언 시간이 길어지자, 윤 전 대통령은 종이컵에 담긴 물을 마시기도 했다.
검찰은 이날 윤 전 대통령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임명한 것을 비상계엄 사전 모의 정황으로 들었다. 이에 윤 전 대통령은 "계엄이란 건 늘상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합참본부 계엄과에 매뉴얼이 있고 국가비상사태에서 계엄을 하기 위한 여러 훈련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홍장원 또 흔들고…26년 검사 경력도 언급
윤 전 대통령은 다시금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증언의 신빙성을 흔드는 데 주력했다. 그는 "제가 홍장원에게 '누구를 체포하라' 또는 '방첩사령관을 통해 누구를 체포하라'고 했다는 것은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홍장원 본인이 방첩사령관에 전화해서 도와주겠다고 하니 (여인형 사령관이) 대답을 안 했고, (홍 전 차장이) '대통령이 도와주라고 했어'라고 자꾸 얘기하니 방첩사령관이 '주요 인사에 대한 위치 파악이 경찰에 하니 안 된다. 국정원은 가능하냐'라고 한 것"이라며 "이걸 마치 제가 체포 지시를 한 것처럼 일을 만들어 낸 것으로 이 거짓말은 헌재에서 자세하게 다 드러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서 헌재는 '이번 기회에 국정원에도 대공 수사권을 줄 테니 자금이든 인력이든 방첩사를 도와 지원하라'고 지시했다는 홍 전 차장의 증언을 사실로 인정하며 '체포조 운용' 의혹에 대해 실체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1시간 20분 넘게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26년간 검사 생활을 하며 치열하게 공직 생활을 했다"며 "이 공소장과 구속됐을 때의 영장을 보니 26년간 정말 많은 사람을 구속, 기소한 저로서도 대체 무슨 내용인지 뭘 주장하는 건지. 이게 어떤 로직(논리)에 의해 내란죄가 된다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남은 오후에는 검찰 측이 신청한 조성현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대령)과 김형기 특수전사령부 1특전대대장(중령)의 증인신문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