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사실상 '반(反)관세' 입장을 밝혔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선포한 지 사흘 만이다.
한때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렸던 머스크는 정부효율부(DOGE) 수장직을 맡으며 행정부 핵심 인사로 활동해 왔다. 그러나 최근 관세 정책을 둘러싼 이견이 표면화되면서 두 사람 사이에 불협화음이 감지되고 있다. 머스크가 DOGE 수장직에서 조기 사임할 수 있다는 관측과 동시에 트럼프와의 결별 가능성도 점차 부각되고 있다.
머스크 "유럽 무관세 필요"…트럼프와 결별?머스크는 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극우 정당 '라 리가'에서 연 '자유의 용기' 행사에 화상으로 참석해 미국과 유럽 간에 '무관세'가 적용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사실 이미 동맹 관계에 있지만 미국과 유럽 간에 더욱 긴밀한 관계가 형성되기를 희망한다. 유럽과 미국이 모두 합의해 이상적으로는 관세를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 유럽과 북미 간에 실질적인 '자유무역지대'를 형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관세와 같은 무역장벽이 아닌 자유무역을 옹호했다.
당초 머스크는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 때부터 "미국과 영국 사이에 관세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자유무역을 중시해 왔다. 그럼에도 머스크는 트럼프의 관세 발표 이후 별다른 발언 없이 침묵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CNN, 뉴욕타임즈(NYT) 등 현지 언론은 머스크가 이번 발언을 통해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반하는 견해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고 해석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머스크의 이번 행보는 관세 여파로 인한 사업 타격이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머스크는 '미국 해방의 날'이라고 부른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 발표 이후 테슬라의 주가 하락으로 110억 달러(약 16조원)의 손해를 본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상하이에 있는 테슬라 공장에는 54%의 고율 관세가 부과돼 수익성에도 큰 타격이 예상된다.
머스크는 같은 날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주도한 피터 나바로 백악관 고문도 공개 저격했다.
그는 엑스(X)에서 한 이용자가 '나바로는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보유하고 있다'고 쓴 데 대해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는 좋은 게 아니라 나쁜 것"이라며 "두뇌(brains)보다 자아(ego)가 큰 것을 의미한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X 사용자가 나바로의 통상정책이 옳다고 방어하자 머스크는 "그는 아무것도 만들어 본 적이 없다"고 응수했다. 직접적 표현은 피했지만, 사실상 트럼프의 통상 정책에 대한 비판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끊이지 않는 머스크 사임설…동업자로선 여전히 견고?
양측의 불협화음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초 내각 회의에서 여러 부처 장관이 머스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자 수지 와일스 비서실장을 따로 불러 "머스크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회의에서는 머스크가 일방적으로 대규모 인력 감축을 단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고, 트럼프도 이에 일부 수긍해 관리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2일엔 트럼프가 측근들에게 머스크가 정부효율부(DOGE) 수장직에서 곧 물러날 것이라고 말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백악관과 머스크 측은 부인했지만, 조기 사임설은 끊이지 않고 있다.
다만 양측이 갈라지게 되더라도 동업자로서의 관계는 끊어지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대체적이다. 4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머스크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59억 달러(약 8조 6288억 원) 규모의 미국 국방부 위성 발사 계약을 이날 수주했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는 머스크의 로켓 회사와 미 정부 간 관계가 깊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