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호> 기후의 눈으로 경제를 읽다. 안녕하세요 CBS 기후로운 경제생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홍종호입니다.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기후 현안 전해드리는 주간 기후 브리핑 시간입니다. 오늘도 CBS 경제부 최서윤 기자 나와 계세요. 안녕하세요.
◇ 최서윤> 안녕하세요.
◆ 홍종호> 정말 여러모로 힘든 한 지난 한 주였습니다. 초대형 산불부터 미국발 관세 폭탄 예고, 게다가 서울에서 땅꺼짐 사고까지 생겼어요. 희생자 유족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 전하면서 얘기 시작해야겠습니다.
◇ 최서윤> 네. 오늘 주제입니다. 내가 발 딛고 있는 땅이 언제든 꺼질 수 있다면.
특히 사고 영상이 그대로 전해져서 많은 분들이 가슴 아파하셨어요. 월요일 저녁 퇴근길에 통행량 많은 도로에서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지난 3월 24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오후 6시 29분경 갑작스럽게 발생한 싱크홀 즉 땅꺼짐 사고로 운전 중 지하에 그대로 매몰된 30대 오토바이 운전자 박모 씨가 결국 사고 발생 약 17시간 만인 이튿날 오전 11시 22분쯤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무려 6차선 도로 중에서 중앙선까지 넘어서 4개 차선을 아우르는 큰 원 모양의 싱크홀이 발생했어요. 지름이 20미터, 깊이가 18미터에 달한다고 합니다.
◇ 최서윤> 사고 현장 옆으로는 올해 1월 개통한 세종-포천 고속도로가 있었고요. 지하 구간까지 포함합니다. 여기서 불과 15미터 거리로 아주 인접했고요. 바닥 바로 밑에서는 지하철 9호선 연장 공사, 중앙보훈병원역에서 고덕 그라시움 아파트 앞 샘터공원까지 쭉 연장 공사를 하고 있거든요. 그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원래 강동구 일대가 최근 재건축 재개발이 굉장히 활발한 곳입니다. 말 그대로 땅 위아래가 공사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기다가 노후 상수도관 파열 문제까지 겹쳐서 사고 원인이 굉장히 복합적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 홍종호> 산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인명 피해는 막았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요.
◇ 최서윤> 맞습니다. 전조 증상이죠. 관련 후속 보도를 쭉 보면요. 가장 가깝게는 사고 발생 바로 전날에 그 밑에 지하철 공사하던 현장에서요. 굴 모양으로 땅을 파는 공사를 하다가 갑자기 물이 흐르는 걸 발견해서 인부들이 급히 대피하는 일이 있었다고 해요. 땅 밑에서는 알고 있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근데 알려지지 않은 겁니다. 위에까지 공유가 안 된 거예요.
또 사고 나기 한 달 전에 지하철 공사 참여했던 관계자가 붕괴 사고를 우려한다는 민원을 서울시에 제기한 사실이 CBS 노컷뉴스 단독 보도로 이후에 알려졌습니다. 관계자가 지하철 9호선 4단계 연장 사업 109 종점 터널 구간이 붕괴 위험이 있다고 지목했는데 정확히 사고 발생 지점 위치입니다. 그 관계자가 그 구간이 암반층이 없대요. 단단하지가 않은 거예요. 그런데 인근 지역이 주택과 차량 통행이 많아서 토지에 가해지는 압력이 많다고 해요. 이러면 붕괴 우려가 있다고 민원을 넣었는데 서울시는 안전성이 확보된 상태로 설계했다는 원론적 답변을 굉장히 간단하게 달았습니다.
◆ 홍종호> 결국 현장 점검을 안 했다는 얘기네요.
◇ 최서윤> 그리고 관계자가 작년 10월에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고 작업 현장 굉장히 위험하다고 문제 제기를 또 했었다고 해요. 그런데 그때도 서울시가 특이 사항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했던 사실이 이번 사고 이후 뒤늦게 알려져서 공분을 자아냈습니다.
◆ 홍종호> 또 서울시가 지반침하 가능성을 1에서 5등급으로 분석한 지반침하 안전지도를 만들어서 갖고 있다고 하는데 이걸 공개하지 않는다고요.
◇ 최서윤> 맞습니다. 한마디로 싱크홀이 일어날 수 있는 지도를 갖고 있는데 공개하지 않은 건데 이번 사고를 계기로 지적되고 있는 문제입니다. 서울시가 최근 10년간 216건의 땅꺼짐이 발생한 일을 계기로 올해부터 지반침하 안전지도를 활용해서 정기 점검과 특별 점검을 하면서 관리하고 있다고 해요.
이번 사고가 발생한 명일동 싱크홀 주변도 특별 점검 대상으로 분류된 지역이었다고 해요. 이걸 알고 있었으면 여기가 위험하다는 걸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었을 텐데 전혀 몰랐던 거예요. 서울시가 위험 지역들을 알고도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주민 불안을 자극하고 많은 분들이 예민해하시는 집값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라는 지적이 제기돼서 또 다른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 홍종호> 집값에 영향을 준다는 게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사실은 그것도 문제는 있지만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서울시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믿기 힘든 말이네요. 도저히 상상이 잘 안 가는데요. 집값 얘기 좀 더 해 주시죠.
◇ 최서윤> 사실은 최근 몇 년간 부동산 시장이 너무 과열되면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예요. 신축 아파트에서 부실 공사가 많이 확인되고 있다고 하거든요. 근데 입주민들이 집값이 떨어질까 봐 쉬쉬하는 경우가 굉장히 비일비재하다고 해요. 입주민 중에 누군가가 언론에 제보하면 제보자를 색출하는 일도 발생하고요. 그러다 보니 섣불리 공개했다가 우리 아파트가 포함되면 주민들이 민원을 강력하게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시에서도 공개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복잡하게 풀어야 할 문제인 것 같아요. 우리가 어디에 우선점을 둬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국토교통부도 나섰어요. 3월 28일 금요일 자로 보도 자료를 냈고요. 이번 사고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하고 유사 사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기 위한 중앙지하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 서울시 관계자는 배제되고요. 지하철 9호선 건설 공사와 관련성이 없는 위원들로 꾸릴 거라고 해요. 토질, 기초, 터널, 지하, 안전 각 분야의 전문가 12명 내외로 구성해서 사고 조사를 실시한다는 방침이고요. 두 달 정도 후인 5월 30일쯤 결과와 대책을 도출한다는 계획입니다.
◆ 홍종호> 현장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에게 직접 피해가 가도 굉장히 비극적인 일인데 사실은 그 지역을 다니는 행인이나 운전자들도 피해를 당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서울시에서 소극적으로 대응할 문제는 절대로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확한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겠고요. 이런 땅꺼짐조차도 기후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어요.
◇ 최서윤> 오늘 이 소식을 우리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주 지목되고 있어요. 싱크홀 문제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요. 가깝게는 올해 2월 영국 런던의 조용한 마을 주택가에서 갑자기 싱크홀이 발생해서 주민들이 대피하는 일이 있었고요. 브라질에서도 북동부 한 소도시에서 거대한 싱크홀이 발생해서 집 250여 채가 와르르 무너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중국 같은 경우에는 거대한 싱크홀이 발생하면 관광 명소가 되는 '웃픈' 일도 일어나고 있어요.
과학 학술지 네이처지가 전 지구적으로 잦아지는 싱크홀의 원인으로 세 가지를 지목했는데요. 일단 노후화된 인프라, 그다음에 기존의 토지 이용 관행, 그리고 세 번째로 점점 더 심해지는 기후변화를 꼽았습니다. 그러면서 대책으로 숨은 지질학적 관점, 지반 공학적 관점, 도시 계획 관점을 전부 통합해서 싱크홀을 완화할 프레임워크를 개선하는 게 시급하다고 촉구했습니다. 노후 인프라 관리, 토지 이용 관행을 바꾸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땅 위와 아래를 잘 관리해 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 홍종호> 아마 우리 방송 들으시는 분들이 앞에 둘 인프라, 토지 이용 관행처럼 지하에 많은 걸 설치하고 땅 파는 게 문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충분히 할 수 있는데 기후변화와 연결된다는 생각은 잘 못하셨을 것 같아요. 그 얘기 좀 더 해 주십시오.
◇ 최서윤> 사실 국내 언론에서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었어요. 이번 사고 발생하기 딱 2주 전에 주간 경향에서 비슷한 문제를 다뤘었는데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각지에서 도심 싱크홀 문제가 심각하니까 이 원인을 지목하면서 기후변화 관련한 영향을 찾아냈어요. 극한 가뭄이 지속되면 지하수 남용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반 지지력이 약해져서 싱크홀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하고요. 또 하나, 집중호우로 지하수 흐름이 변하면 토사가 유실되면서 싱크홀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후자, 국내 집중호우 시기에 싱크홀 발생 신고가 늘고 있다고 하거든요. 과학동아 편집장 지낸 윤신영 과학전문기자가 2018년 1월부터 2024년 8월까지 약 7년 3개월간 전국에서 벌어진 지반침하사고 1400건을 분석했는데요. 그 결과 땅꺼짐 발생 건수가 8월이 277건으로 가장 많았다고 해요. 그다음이 6월 201건, 7월 186건, 5월 141건 순이거든요. 거의 절반인 47%가 여름철에 집중돼 있는 겁니다. 강수량이 많으면 토양이 물을 머금고 있어서 약해지고 쉽게 쓸려간다고 해요. 그러면 지하에 구멍이 형성되기가 쉽다고 합니다.
◆ 홍종호> 말씀 들어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네요.
◇ 최서윤> 그렇죠. 또 큰비가 내리면 노후 하수관 손상이 쉽게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주목해야 돼요. 최근 우리나라 여름철 보면 기후변화 때문에 강수량 자체도 늘고 있지만, 더 중요한 건 한 번에 강력한 비가 쏟아붓듯이 몰아치는 스콜성 폭우가 되게 잦아지고 있잖아요. 싱크홀 대책 단단히 준비해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 홍종호> 그래요. 기후변화가 우리 삶에 전방위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우리가 아직도 개발, 특히 땅 및 지하 개발에 너무 몰두하고 있는 게 아닌가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철도지하화, GTX,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심지어 어느 정치인은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얘기도 했던 기억이 나요. 땅 밑을 파는 SOC 사업이 계속되는 거 어떻게 보십니까?
◇ 최서윤> 안 그래도 우려가 있지 않나 싶어서 국토부 관계자에게 문의해 봤는데요. 국토부 관계자는 과거에 조성된 지하 인프라 같은 경우에는 주로 2-30m 깊이에 집중돼 있고, 세종-포천 고속도로 지하화, GTX 사업 같은 거는 지하 50m 대심도에 조성되기 때문에 층이 달라서 이론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설명입니다. 그렇긴 해도 우리가 이번 명일동 싱크홀 사고로 이론상 문제없다는 당국 설명이 신뢰 얻기는 조금 어려워 보여요. 기후변화와 맞물려서 예상치 못한 리스크가 커지고 있기 때문에 만일을 대비한 안전 문제에 조금 더 신경 써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 홍종호> 절대 이런 일이 생기면 안 되겠지만 저처럼 지하철 타고 다니고 늘 걷는 입장에서는 이런 문제가 진짜 남 일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도 닥칠 수 있는 비극이라고 생각하게 되네요.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CBS 최서윤 기자였어요. 고맙습니다.
◇ 최서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