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한 헌법재판소가 작성한 114쪽 분량의 결정문은 '파면' 그 이상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헌재의 결정은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한 대통령을 단순히 직에서 끌어 내리는 '보복적 정의'를 향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회복적 정의'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헌재는 이번 결정문을 통해 우리 사회에 크게 3가지 교훈을 전했다. '시민 저항'의 힘을 인정했고, 배제의 정치 대신 '설득과 협치'의 리더십을 제시했다. 그리고 아픈 역사를 기억하며 '국가긴급권 남용'에 경고를 날렸다.
그날 밤 '시민 저항'의 힘, 헌재가 인정했다지난해 12·3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 수백 명의 시민들은 국회 앞을 에워쌌다. 시민들은 국회의원들이 담장을 넘어 국회에 진입할 수 있게 도왔고, "비상계엄을 철폐하라"고 외치며 자신들을 둘러싸는 군과 경찰에 맞섰다. 결국 다음날 새벽 국회는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할 수 있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문에서 "피청구인(윤 전 대통령)의 국회 통제 등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을 가결시킬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다"고 판단했다.
이어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이 가결됐다는 이유로 피청구인의 법 위반이 중대하지 않다고 볼 수는 없다"며 윤 전 대통령의 행위가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헌재가 지난해 12월 3일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내란 우두머리 등 내란 세력에 굴복하지 않고 그에 맞서 국회를 지킨 시민들의 저항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재차 확인해준 것이다.
배제의 정치 대신 '설득과 협치'의 리더십 제시
"피청구인에게는, 야당의 전횡을 바로잡고 피청구인이 국정을 주도하여 책임정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국민을 ' 설득' 할 2년에 가까운 시간이 있었다.
그 결과가 피청구인의 의도에 부합하지 않았다고 하여 (…) 헌법이 예정한 경로를 벗어나 야당이나 야당을 지지한 국민의 의사를 ' 배제 '하려는 시도를 하여서는 안 되었다."
탄핵심판 변론 내내 윤 전 대통령 측은 22건의 탄핵소추안 발의 등 '야당의 폭거'로 인해 비상계엄 선포를 할 수밖에 없었다며 야당 탓을 해왔다.
하지만 헌재는 이러한 윤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이 야당을 '배제'하는 대신 '협치'라는 대안을 선택할 수 있었다고 봤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피청구인은 헌법개정안을 발의하거나,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이거나 정부를 통해 법률안을 제출하는 등 권력구조나 제도 개선을 '설득'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청구인 역시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헌법이 정한 권한 배분 질서에 따른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했어야 한다"며 "피청구인은 국회를 '배제'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는 민주정치의 전제를 허무는 것이므로 민주주의와 '조화'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결정문을 통해 헌재는 한 민주국가의 지도자가 가져야 할 리더십, 즉 설득과 협치의 정신이라는 방향을 제시한 셈이다.
아픈 역사 언급하며 '국가긴급권 남용' 일침도
또한 헌재는 결정문에 우리 국민들이 지나온 '아픈 역사'를 서술하며, 계엄선포권이라는 '국가긴급권 남용'에 대한 경고를 남기기도 했다.
헌재는 "우리나라 국민은 오랜 기간 국가긴급권의 남용에 희생 당해온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년과 1979년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등이 1980년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아픈 역사를 되짚었다.
이어 "피청구인은 마지막 계엄이 선포된 때로부터 약 45년이 지난 2024년 12월 3일 또다시 정치적 목적으로 이 사건 계엄을 선포함으로써 국가긴급권을 남용했다"며 "이제는 더 이상 국가긴급권이 정치적 목적으로 남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국민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만약 (이러한 법 위반 행위를 한) 피청구인이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다시금 행사하게 된다면, 국민으로서는 피청구인이 헌법상 권한을 행사할 때마다 헌법이 규정한 것과는 다른 '숨은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을 끊임없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국가긴급권은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여러 권한들 가운데서도, 중대한 위기상황에만 지극히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비상권한'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 행사에 있어서 헌법적 한계가 특히 엄격하게 준수될 필요가 있다"며, 미래의 지도자가 곱씹어야만 할 교훈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