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①[인터뷰]이금규 변호사 "尹 파면은 시작…내란 잔불 정리해야"
②[인터뷰]"우리도 얼싸안았다"…尹탄핵 콤비 전형호·황영민 변호사
③[인터뷰]'세월호 변호사' 권영빈 "12·3 참사, 이번엔 국민들이 막았다"
(계속)
그날 밤 무장한 계엄군과 맨손의 시민들이 마주했다. 시민들은 온몸으로 계엄군의 국회 진입을 막았고 군인들이 탄 차량을 에워쌌다. 혼란 속에 뒤엉켜 넘어지는 시민과 군인도 있었지만 서로 일으켜 세우며 부상을 염려했다. 국가 권력에 의한 비극적인 대치, 말 그대로 '참사'였다.
국회 탄핵소추위원 법률대리인단에 참여한 권영빈 변호사는 12·3 비상계엄을 '참사'로 정의했다. 대통령이 헌정질서를 무너뜨림으로써 국민에게 비통함을 안겨준 대형 인재(人災)라는 것이다.
참사를 직면하는 과정은 아리고 쓰다. 때로는 참사보다도 참사를 반추하는 과정이 더 고통스럽다. 상상한 것 이상의 지난한 시간 동안 잡히지 않는 실마리를 찾아 헤맬 수도 있다. 권 변호사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11년간 4·16 그 날의 진실을 좇아 왔고, 이번엔 12·3 비상계엄이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거짓말을 깨기 위해 나섰다.
16일 세월호 참사는 11주기를 맞았지만 우리 사회는 참사의 교훈이 무색하게 수차례 비극적인 희생을 반복했다. 헌정 파괴를 시도한 비상계엄의 여파는 어떨까.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끝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CBS노컷뉴스는 윤 전 대통령 파면 후 권 변호사를 만나 소회를 물었다.
주문이 울려퍼지던 순간, 눈물을 참았다
권 변호사는 선고문 낭독이 시작된 그 순간부터 느낌이 좋았다고 했다. 그래도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니 안심하지는 못했다. 22분간 식은땀마저 흐르던 긴장의 시간 끝에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15글자가 울려 퍼졌다.
"소름이 쫙 돋으면서 눈물이 찔끔 날 뻔 했어요. 순간적으로 시간이 멈춘 것 같고, 그 느낌은 표현하기가 조금 어렵긴 한데 눈물을 참으려고 애썼습니다. 눈물이 나오면 창피할 것 같아서요. 그러고 나서 옆을 봤는데 저희 대리인단 중에 이원재 변호사님 눈이 빨갛더라고요. '형 울었구나' 했습니다."
선고 영상을 다시 돌려보던 그는 선고 당일 그랬던 것처럼,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었다. 다시 봐도 그날의 감동이 되살아난다고 했다.
만감이 교차했던 변론 과정 "尹에게 고맙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파면' 결론을 얻기까지 여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고 말할 때, 권 변호사는 분노가 치밀었다. 권 변호사는 "실제로 군인이 동원되고, 이미 벌어진 일인데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차라리 포고령에 '유효기간은 2시간'이라고 썼다면 그나마 인정하겠다. 정말 너무 황당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윤 전 대통령 대리인단이 써낸 의견서를 봐도 '계엄이 며칠은 갈 거라고 생각했다'는 건데, 심판정에서는 '2시간짜리다, 아무 문제없는 거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라고 덧붙였다.
분노를 유발한 건 윤 전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김현태 전 특수전사령부 707특임단장도 '분노 유발자' 중 한 명이었다. 김 전 단장은 계엄 선포 5일 뒤 기자회견을 자처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가 있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실토한 인물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증인석에 나와서는 "끌어내라는 지시가 없었다"고 말을 바꿨다.
권 변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심판정에 안나왔지만 이번엔 윤 전 대통령이 바로 눈앞에서 (증인을) 째려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답을 할까 생각하긴 했다"며 "어쨌든 책임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증언하길 기대했는데 김 전 단장이 삐딱선을 탔다"고 했다.
그러나 김 전 단장의 진술이 이 판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곽종근 전 특수전 사령관은 6차 변론에서 "증인한테 데리고 나오라고 지시한 대상이 국회의사당 안에 있는 국회의원들 맞냐"는 권 변호사의 질문에 "정확히 맞다"고 답했다.
권 변호사는 "그때 정말 '우리가 이겼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정말 중요한 증언인데, 곽 전 사령관이 그렇게 답변하니 이제 정말 큰 고비를 넘었다, 80~90%는 넘어섰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의외의 귀인'들도 있었다. 다름 아닌 윤 전 대통령과 그 대리인들이다. 권 변호사는 "윤 전 대통령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니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좋다고 생각했다"며 "스스로 자기가 잘못한 것을 시인하고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윤 전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변론에 대해서도 권 변호사는 "그 쪽에서 하이브리드전이나 부정선거론을 열정 넘치게 이야기 하는 걸 보며 고마웠다"며 "그야말로 재판관들에게 '우리는 변론을 포기했다. 방어를 포기했다'는 식의 메시지로 보였을 것"이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와 비상계엄 넘어 '안전 사회' 꿈꾼다
세월호 1기 특별조사위원회와 선체조사위원회 활동을 하며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10년 넘게 헌신해온 권 변호사는 4·16이 12·3으로 이어지기까지 우리가 놓친 점들을 되짚어보기도 했다.
권 변호사는 "세월호 참사가 '국가의 부재'였다면, 12·3 내란사태는 '국가 권력에 의한 헌법 파괴'였다"며 "윤석열 정부에서도 국가의 잘못이 반복된 것이다. 10년이 지났으면, 세월호 참사로부터 교훈을 얻었다면 그러지 않아야 하는 건데 뭐가 달라졌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당시 소위 '배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진실을 덮으려고 했던 모습과, 이번 내란사태 이후 탄핵심판정에서 소위 '법 전문가'(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외교 전문가'(조태용 국정원장)라는 이들이 자기 변명에만 급급했던 모습이 겹쳐 보였다고 했다.
다만 권 변호사는 세월호 참사 당시보다 세상이, 국민이 진보했다고 믿는다. 그그는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국가가 국민을 포기했는데 우리가 모두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며 "이번에는 우리 국민들이 막아냈다. 국가권력이 파괴하려고 했던 헌법질서를 주권자인 국민이 지켜내려고 했던 것이 세월호 참사와는 조금 달랐다"고 평가했다.
또 "세월호 11주기 직전에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것도 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세월호 참사로 별이 된 단원고 아이들이 국민들과 함께 마음을 모았던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이 선고되던 때를 회상할 땐 역동적으로 웃었던 권 변호사는 인터뷰 중반을 넘어서 세월호 참사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눈물을 참느라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는 이같은 참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권 변호사는 '안전한 사회'를 강조했다. 물리적인 안전뿐 아니라 헌법 질서가 바로 세워진 안전한 사회 말이다. 그래서 권 변호사는 세월호 참사의 복구 과정과 마찬가지로 "내란 잔불 정리가 시급하다"고 했다. 약 두 달 후 등장할 다음 정권이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으려면 위법한 비상계엄에 관여한 세력들을 깨끗하게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 변호사는 "내란 세력은 지금도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어쩌면 그들은 윤석열 하나를 희생양 삼아 자신들의 살 길을 이미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